지금 할喝 말

by 김지숙 작가의 집
묘적암가는길.png

지금 할喝 말

지금 할喝 말



개미는 물 위를

참 가볍게도 걷는다.

모두를 비운 제 한 몸

저토록

가볍다는 것을 언제부터 알았을까


제 몸무게보다 더 무거운

나뭇잎 한 조각 베어 물고

물웅덩이에 빠져 허둥대며

죽어도 입을 열지 못하는 저 개미는

분명 어미다


새끼의 밥이니까

생명줄이니까

먼저 깨친 자의 ‘喝’

말 못 하는 고통이니까.


이 시를 쓰게 동 동기는 산행을 하면서였다 먼저 나는 산행을 즐기지는 않지만 살다 보면 의지와 무관하게 무리에 얹혀 산을 올라야 하는 때가 있다

지금도 그렇지만 평생을 지독한 저혈압으로 살아왔다 그런 나에게 산을 오르는 일은 정말 끔찍한 일이다 저혈압의 경우 더운 날이나 땀을 많이 흘리면 혈관이 이완되어 피돌기가 더 느려지기 때문에 어지럼증이 생겨 실족하기 쉽다 실제로 나는 땀 흘리는 일을 싫어하고 그런 후에는 핑 돌려서 어지럽고 순간 당황한 적이 꽤 있다

그래서 어지간해서는 높은 산을 오르지 않는다 녹차나 커피 콜라 박카스 등 카페인이 많이 든 음료를 미리 마셔두면 상황은 좀 달라질 수는 있다 하지만 대신 밤잠을 설쳐야 한다 그래서 매사에 조심하고 건강에 관해서는 대충 두리뭉실 넘어가는 것을 질색으로 여기게 되었을 수 있다

산행 중 어지러워서 자주 쉬는 내게 사람들은


'그래서야 언제 정상에 오르겠냐'


고들 하면서 앞서 간다 나는 개의치 않고 나만의 속도로 걷되 그들이 보이지 않을 정도가 되면 또 달리기도 하다가 걷기도 하면서 그들의 속도에 맞추면서 무지 애를 쓴다

사람들은 대체로 모든 기준을 자신에게 기준을 둔다 그래서 꼰대 소리도 듣고 이기적이라는 소리도 듣고 또 실제로 턱턱 막힌 벽이라는 말들도 한다 타인의 인생을 자신의 창구멍으로 바라보고 그 잣대로 평가하는 일은 청소년 시절에나 할 일이고 용서되며 그즈음 끝내야 한다고 생각해왔다

하지만 세상의 꽤 많은 사람들은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자기 기준에 엄격하게 통과되어야 옳다고 믿고 있다 그 기준으로는 영원히 상대를 이해할 수 없다는 사실을 모른다 아예 나이가 들어서도 온전히 그렇다면 그냥 그 사람을 포기하는 편이 낫다

이후로는 이름 없는 높은 산 사람들이 잘 다니지 않는 산은 어지간해서는 거의 거절한다 차라리 등산 동호회를 따라갔더라면 후미 담당이 항상 붙어 있어 혼자 남거나 길을 잃거나 하는 일은 없다 아주 오래전에는 등산을 너무 못해서 동호회를 몇 번 따라갔다가 후미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어 그만둔 적도 몇 번 있다 산행은 나와 맞지 않는다고 여겨졌다

눈이 많이 내린 산을 오르면서 죽을 뻔한 일도 길을 잃은 적도 있었다 다른 사람들의 기준에 거절하지 못하고 아니 거절할 형편이 못되어 질질 끌려다니다가 생긴 일이었다 난 이런 대단한 리더가 의뭉스럽다 자기가 잘 걷는다고 사람들의 형편을 고려하지 않고 뒤돌아보지도 않고 달아나 버리듯 반 강압적으로 무리를 이끌고 산속에서 사라지는 이기적인 리더. 등산대회도 아니고 특수부대 훈련은 더더구나 아닌 목적이 전혀 다른 단합대회에서 자기가 제일 좋아하고 강한 종목을 택해 회원들을 끌고 가는 리더. 난 절대로 그런 사람은 되지 못한다

눈 내린 산에서 앞서 사람들이 걸어 올라가고 갈래 길에서 나는 길을 잃고 물가에 앉아 었다 무섭기도 하고 다시 내려가기에도 길을 모르고 또 혼자 가기에는 길이 험했다 산물이 내려오는 계곡에 누군가가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머리끝이 쭈뼛거리고 무섭기도 했다 멧돼지도 뱀도 나를 보고 내려올 것 같았다 사람이 더 무서울 수도 있는 상황이다 위험천만한 일인 줄 알지만 그래도 여자들이 섞여있는 사람들을 기다리는 일 외에는 방법이 없었다

홀로 남은 나는 산의 적막에 귀가 아팠다 곁에 흐르는 물줄기에서 조금 벗어난 큰 웅덩이 물이 도는 곳에 제법 큰 개미가 커다란 나뭇잎을 물고 뱅뱅 돌고 있었다 저 잎을 놓아버리면 빠져 죽을 것 같았다 저 나뭇잎을 놓지 못하는 이유는 뭘까 생각했다 저 나뭇잎을 먹이라고 생각한 걸까 나는 혼자 깊은 산에 혼자 놓였다는 것을 잠시 잊고 있었다

개미를 땅 위로 올려주고 마침 감사하게도 여자 등산객들이 주를 이루는 하산객들이 있어 그 무리에 끼여 산을 내려온 적이 있었다 그게 트라우마 되었는지 나는 산을 잘 타는 지인들과 산행을 거의 하지 않는다 야생초를 탐사하며 부득이하게 산을 탈 때에도 무리 지어 다니고 내가 리더 될 때 혹은 나의 저혈압을 잘 알고 이해하는 사람들과 산행을 한다 왜냐하면 나의 몸에 알맞은 속도와 비상시 돌아 나오는 길을 훤히 잘 아는 안전한 산을 원하기 때문에 실속 확률은 거의 없다 산행의 이유가 산 정상에 오르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느리지만 자연을 즐기면서 함께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는데 목적을 두기 때문이다

나의 값진 삶을 나와는 다른 목적을 가진 의미 없는 산행에 버릴 뻔한 우를 더 이상 저지르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먹인 줄 알고 죽을 줄도 모르고 물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하는 개미가 아니라 아예 물에 들어가는 기회를 만들지 않는 현명함과 지혜로움을 잃지 않고 살아남는 게 더 중요하다

좀 더 현명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 때였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홀가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