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정타
산 깊어 빗소리조차 사라진 겨울 산사
칼칼한 벼루 한 점
날카로운 언저리는 새댁의 생 속처럼 도도하고
연꽃문양 뚜껑은 좌불한 비구니를 닮았다
저 뚜껑 열 때마다 단청은 새 옷 입고,
사명대사 초상화로 환생했다니
지금쯤 손때 묻고 모서리쯤 닳아야 하건만
성불을 포기했나 먹 갈기를 포기했나
깍지벌레 붙은 산다화 맹맹한 그 모습
‘세상만사 제 본분대로 살다가는 것’
무심한 스님 무연인지 무정인지
그곳의 생명들이 모두 생인손 앓는다.
내게 특별히 어떤 종교가 있는 것은 아니다 아주 어릴 적, 초등학교 4학년에 다닐 즈음 같은 반 친구 하나가 일요일이면 나를 찾아와서는 교회에 가자고 대문에 붙어 서 있었다. 결국 그 친구의 어거지에 못 이겨 교회를 갔다. 내가 그다지 친하게 지낸 친구도 아니었는데 왜 그렇게 나를 교회에 못 데려가서 안달이었는지 그 친구의 고집에 못 이겨서 갔다
그런데 그 친구와 10년 전쯤에 연락이 닿아 통화를 했다 비교적 성공한 듯한 그 아이는 그다지 나를 반가워하지도 않았고 그리고 그런 옛일들을 까마득히 잊고 산 듯했다 4학년 그 시절 그 아이가 내게 찾아오는 일요일은 정말 싫었고 끔찍했다
할머니 엄마 일가친척이 대부분 절에 다니는 절실한 불교 집안이라 그 부탁을 들어주기에 힘들었지만 그래도 같은 반 친구가 끈질기게 부탁해서 반강제적으로 가 주긴 했는데 손뼉 치고 노래하는 것이 정말 시끄럽고 정신이 나갈 것처럼 싫었다
결혼하기 전에는 집 가까운 곳에 천주교 성당이 있었다 왠지 조용하고 단아한 모습을 하고 있는 성당을 스스로 찾으면서 마음이 불편한 일이 있던 나는 천주교인이 되기 위해 교리 공부도 하고 미카엘이라는 세례명도 받았다 정말 열심히 성당엘 다녔다 그때는 수녀가 되어도 좋겠다는 생각도 했다
결혼해서 이사를 하면서 성당과는 멀어졌다 아이를 키우면서는 아파트 위층의 층간소음 때문에 찾아간 위층 아줌마가 교회를 같이 다니자는 끝도 없는 극성에 못 이겨 결국 그녀가 다니는 교회를 내가 더 열심히 주야장천 다니면서 새벽기도를 하루도 빠짐없이 하는 독실한 기독교인이 되었다
나이가 꽤 들면서 모임을 같이하는 친구의 부탁을 거절할 수 없어서 정토 모임에 가서 법륜스님의 말씀을 들었다 친구가 좋아서 함께 하는 시간을 갖다 보니 마음속으로는 이미 기족교와 불교를 비교하면서 정토의 이런저런 활동을 하다가 이사를 가면서 자연스레 끊어졌다
이런저런 일로 한 때 양산에 산 적이 있다 그래서 가장 최근에는 홀로, 통도사 이곳저곳을 돌면서 점심시간이면 가끔 공양을 하기도 했다 통도사가 집과 가까워 자주 가곤 했다 매화가 필 때면 어김없이 찾았다
커다란 기와집이 많아서인지 미치 고향집에 온 것처럼 평온했다 마음이 복잡하거나 힘들 때면 통도사 일대를 자주 돌아다녔다 그때 통도사는 친정이 사라진 내겐 친정집이었고, 아늑한 고향집이었으며 시가 내게 친구인 것처럼 통도사도 또 다른 나의 절친으로 등극했다 빠짐없이 경내의 여러 작은 암자들도 돌아다녔다
이 시는 통도사의 경내에 있는 작은 암자를 찾으면서 겪었던 일이다 오래된 사찰 입구에 벌레가 잔뜩 먹은 산다화가 자리 잡고 있었다 절집을 들어서면서 절집 툇마루 아래에는 한 번도 쓴 적도 없는 것 같은 벼루가 땅바닥에 먼지를 뽀얗게 먹은 채로 놓여 있었다
여느 절과는 조금 다른 모습을 보았고 마침 마당에 서 있는 주지스님이 그 벼루로 이런저런 그림들을 그렸다 하고 단편적인 여러 말들을 했지만 귀에 들어오지는 않았다 나의 눈은 벌레 먹은 꽃들을 보고 있었고 내내 내 마음이 불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