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 『어서와 봄날』
청명첫물차
비취빛 첫 잔은 애잔한 삶의 맛이다.
떫고도 톡톡한.
취록색 둘째 잔은 정갈한 바람의 맛이다
감칠 듯 부드러운.
맑은 녹색 셋째 잔은 넉넉함의 맛이다
짜지만 그윽한.
연초록 넷째 잔은 나즉한 무생의 맛이다
적적하고 향기로운.
처마 끝에서 찻물이 떨어진다.
능소화도 감물 치마 곱게 차려 입고 차를 마신다.
차밭 끝자락에서도, 길손의 찻잔에서도
하늘로 오르는 안개무는 찻물처럼 달다.
마셔도 마신 적이 없는 청명 첫물차
한 때 차를 배우러 다닌 적이 있다 덕분에 아주 좋은 차를 수시로 마시고 음미하며 맛을 느끼고 비교하며 차를 마셨다 산성에 있는 다실에 간 적이다 그곳에서도 값이 꽤 나가는 차들을 마시곤 했다 하지만 나는 청명첫물차를 잊지 못한다
친구 따라 강남 간다고 학창시절 유닌하 치를 좋아하는 친구가 있어 덕분에 이 절간 저 절간을 수시로 다니면서 좋은 치들을 마시곤 했다 그 때 어느 스님이 말씀이 청명첫물차라면서 손수 내린 찻잔을 건넸다 물론 그 때 처음으로 녹차를 격식 갖춰 마사는 차라고 알게 되었다
물론 그 전에도 집에서 아버지께서 끓여마시던 차맛도 우유를 얹어 마시던 홍차맛도 좋아했고 수시로 마셨고 중국집에 가면 맨 먼저 나오는 보이차도 마셨다
하지만 격식을 다 갖춘 스님들의 찻자리에서 찻잔을 앞에 놓고 침묵과 긴 말들이 오고 가는 것을 경험한 찻자리는 처음이었다 끼어들 수 있는 자리가 아니라서 묵묵히 차맛만 음미하다가 나오곤 햇는데, 그래도 가끔씩은 그 찻자리에서 느낀 느낌들을 되새기곤 했다 그래서 혼자서 차를 마시곤 했다 그러다가 우연히 차수업을 받게 되었고 그곳에서 다시 청명첫물차를 만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