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詩集『봄봄 봄봄』
시간의 숨소리
너무 가벼워서 듣지 못하네
슬픔이 허공을 감싸 안은 채
몰래 묶은 하늘 안에 속속 박혀
아무 데도 가지 않은 시간
작은 소리라 행여 놓칠세라
오르내리며 마음 졸이지만 언제나
작은 곳에서 세상의 시간은 시작되고
하찮은 몸짓에서 목젖까지 올라오는 동안
대체 몇 번을 쉬었다 왔을까
제자리를 떠나면 아무 것도
남지 않아 그 자리에 몸을 맡긴
나무처럼 허공과 허공 사이에서
반짝이는 시간들이 내쉬는 숨소리가 들린다
가만히 귀를 기울이면 사람만 숨을 쉬는 것이 아니다 시간도 시시각각 숨을 쉬고 달려온다 살아있는 사람처럼 시간은 언제나 내 곁에 머물러 있지만 그 시간은 의지에 따라서 길게도 짧게도 움직인다 주도적으로 움직이는 시간은 가만있어도 숨소리를 내며 지나간다
길과 길 사이 골목과 골목 사이로 가느다란 숨소리를 내며 때로는 커다란 함성을 지르며 지나가면 그 사람의 시간도 함께 지나간다 어쩌면 사람이 만든 시간이지만 사람보다도 더 바쁘게 살아 숨 쉬는 것이 시간이다 사람이 태어나고 자라고 병들고 죽듯이 시간도 사람 주위를 돌면서 그렇게 태어나고 자라고 병들고 사라진다 아니 시간은 어쩌면 또 다른 시간에 이끌려 다니는 것은 아닐까 초침은 분침에 분침은 시침에 시침은 하루에 하루는 일 년에 일 년은 평생에 이끌려 깜빡 한 세상을 살다가는 것은 아닐까
사람들은 시간을 자주 허투루 다룬다 그럼에도 빨리 세월이 가서 죽기를 바라는 사람은 아마도 별로 없을 것 같다 시간은 먼 길을 데려다준 늘 함께 해 온 인생이라는 여행의 동반자이다 그래서 알게 모르게 그림자처럼 적당한 거리를 두고 뒤서거니 앞서거니 하면서 함께 시작해서 함께 끝낸다
친구라는 의미보다는 동반이라는 의미가 더 강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시간을 허투루 혹은 함부로 여길 수 없는 이유도 소중한 자에게는 소중하게 함부로 여기는 자에게는 함부로 흘러가는 게 시간이다 강가의 돌멩이도 시간을 먹고 자란다 아니 자란다기보다는 작게 잘게 삭아간다
사람도 마찬가지이다 자기 인생에 주어진 시간을 다 먹고 나면 바위가 돌멩이가 세월 속에서 자갈이 되고 모래가 되고 먼지가 되어 사라지듯이 한 사람의 시간도 그 사람을 삭게 한다 그나마 그 사실을 안다면 자신을 자라게 하고 먼 길을 데려다준 시간에 대해 감사해야 한다
내게 남은 시간은 얼마나 되는지 안다면 사람들은 숨 쉬는 일조차도 아껴 쉴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것을 모르기 때문에 흥청망청 시간을 흘려보낸다 한자리에 놓여 있는 나무도 아는 시간의 한계를 사람은 쉽게 잊고 산다 무한하지 않다는 것을 너무 잘 알면서 생각 없이 인생길을 걸어간다 하루만 더 한 시간만 더 하면서 살아가는 삶이 어떤 삶이었는지를 보면 그 사람의 앞으로 남은 시간들도 알 수 있다
사는 동안 꽃길만을 걷기를 바라지만 꽃이 없는 길을 걷는 시간을 더 많이 보냈으리라 왜냐하면 꽃이 사시사철 피어있지 않기 때문이다 힘들고 아픈 때에는 빨리 지나가기를 바라지만 그럴수록 시간은 더 더디게 흘러간다 꽃다운 청춘도 자신이 꽃인 줄 모르는 새 다 지나간다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을 붙잡을 수 없고 시간은 기다려 주지도 않는다
하지만 시간은 끝이 있다는 것을 알고 눈 깜짝할 사이에 그 끝자락에 서 있을 수 있다는 점을 깨닫는다면 함부로 시간을 보내지는 않을 것이다 멈추지 않고 지나가는 시간을 그 시간이 내는 숨소리를 느끼면서 알뜰 살뜰하게 시간의 손을 잡고 시간과 더불어 온 생을 살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