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詩集『봄봄 봄봄』
계단있는 집
길 끝에는 늘 계단이 있었다
그 계단을 다 오르자
오던 길은 어느새 사라지고
야윈 달이 내려다 본다
우뚝 올라선 대문이 열리고
다시 내려와야 할지
그 대문을 열고 들어서야 할 지
한참을 우두커니 서 있던 그 자리
침묵이 큰 문을 열고 나와
홀로 빼꼼히 밖을 내다보더니
찬바람이 숭숭 든 고드름을 닮은
단단한 이별 하나를 건넨다
이별,
서로 다른 별로 간다거나
혹은 가겠다는 뜻이거나
어릴 적 계단이 있는 집에서 살았다 지금이야 대부분의 사람들이 사는 이파트는 무수한 계단으로 이어져 있다 하지만 몇십년전에는 계단을 올라 커다란 대문을 열고 집으로 들어서면 앉아타는 그네가 보이고 계단 위에서 뛰어 내리기도 하고 가위바위보도 하면서 놀았던 기억이 난다 조금 높은 계단을 보면 자주 그즈음으로 돌아가기도 한다
그리고 꿈을 꾸면 그 집 문을 열고 들어선다 막상 들어서고 보면 우리집인듯 아닌듯 엄마의 부엌인 듯 아닌 듯 다른 사람이 있지는 않았지만 엄마가 곧바로 나오지도 않았다 오래전 살던 집 계단을 올라가는 꿈을 꾸고 나면 지나간 일들이 그립다 내가 어쩔 수 없는 삶과 이야기들이 이제는 모두다 흘러가 버리고 내가 어쩔 수 없는 공간들이 사라졌다
이미 다른 별로 떠나버린 사람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콱 막힌다 내가 할 수 없었던 숙제에 대한 의무감도 무시하지는 못한다 그렇다고 꼭 나의 숙제는 아니었지만 그렇게 규정지어진 숙제들로부터 나는 늘 자유롭지도 못했다 그런 짐들을 지워준 사람들이 누구인지 알고 있지만 이미 그 사람들도 다른 별로 떠나갔다
계단을 보거나 꿈에 계단을 올라 서면 어릴 적 살던 집으로 들어가고 그곳에 갈 때면 언제나 그대로의 옛모습을 기대하지만 단 한번도 그 때 그대로의 모습을 본 적은 없다 변형되고 변화된 모습으로 원하지 않는 집을 보거나 혹은 대문이 열리지 않아 옆집을 통해 가거나 혹은 벨을 눌러 꼭 들어가야 했다 그게 꿈이어도 아니어도 늘 마찬가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