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詩集『봄봄봄』
뿌리
어둠을 친구 삼아
한 갈래 두 갈래 천 갈래 만 갈래
낮게 몸을 펼친다
아무도 없는 곳에서
까맣게 타들어가는 마음
다독이며 보듬으며
바람도 구름도 별도 없는
지독한 어둠 속에서
우람한 꿈을 키운다
땅 속에서 길을 찾아
끊임없이 세상을 가로질러
푸른 잎을 내고 붉은 열매 맺어
어두운 곳에서 밝은 자리 잡아
희망을 키운다
우리나라사람들은 오랜 역사를 지니고 산 것을 자랑스러워한다 그래서 유독 뿌리에 대한 자긍심이 강하다 뿌리가 깊이 내린 나무는 바람에도 넘어지지 않는다고 용비어천가에도 기록되어 있다 부리의 존재를 생각하고 잘 다룰 줄 아는 사람만이 나무를 기르는 식물집사의 자격이 있다는 생각이다
우리 고유의 식물들은 뿌리를 잘 드러내지 않는 반면 열대식물들은 뿌리가 엄청나게 빨리 자라고 위로 솟구치기도 한다 나무에 대한 식견이 부족할 수도 있고 편견일 수도 있지만 그렇게 느껴진다
뿌리가 하는 일은 잎이 모르고 가지가 모른다 바람을 알지 못하지만 물을 아는 뿌리는 푸른빛은 모르지만 황톳빛은 안다 저마다 제게 필요한 것은 잘 알고 헤쳐나간다 뿌리는 자신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알고 그렇게 깊이 땅 속으로 들어가고 앞과 가지는 푸른 하늘을 향해 자신의 역량대로 반짝인다
뿌리에서 싹을 틔울 즈음이면 꽤 시간이 흘렀다는 증거이다 그만큼의 시간이 흘러야 빛을 본다는 말이 되기도 한다 뿌리마다 다 싹을 내는 것은 아니지만 오랜 세월 땅속에 묻혀 있더라도 언젠가는 빛을 보는 사람이 있다 뿌리에서 새로운 싹을 내는 식물을 보면 꽤 오랜 인고의 세월을 땅속에서 보낸 뿌리를 생각하게 된다
땅속을 뚫고 내보낸 희망의 덩어리가 위로 위로 자라나는 모습을 보면서 어둠 속의 일들은 까맣게 잊기도 한다 그런 걸 보면 어디에서도 희망은 어느 뿌리에서건 새싹을 내린다 어느 구름에서 비 떨어질지 모르는 것처럼. 사람이 살아가다 보면 어느 어둠이건 어느 하늘이건 갑자기 희망이 얼굴을 들이미는 행복을 만날지 모른다 그런 생각을 하면 늘 가슴이 두근거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