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詩集『어느 봄날의 일기』
이름
이름을 들으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단풍 제비꽃 고라니
소나기 달 별 해 바다
수많은 이름을 부르면
수많은 그들이 달려오지만
어머니 아버지를 생각하면
언제나 따라붙는 얼굴들은
세상에서 하나이다
같은 물이지만 물방울이다가 눈이나 비되어 흐르다가 고랑물이다가 강물 바닷물이 되고 수증기가 된다 같은 종류이지만 바닷가에 피면 갯버들 갯머구 갯메꽃 처럼 자기가 태어난 곳의 이름이 앞에 하나 더 붙는다 세상에는 하나밖에 없는 이름은 없다 하지만 그 이름의 내면에 깃든 이름은 하나이다
학교 다닐 때는 베이비 붐세대들이 대부분이라 같은 이름들이 많았다 그래서 처음에는 어느 반 누구 몇 번 누구라고까지 이름을 부터 부른 적이 있다 몇 번 누구라는 같은 이름을 가졌지만 대부분의 아이들은 다른 모습을 하고 다른 성품과 잘하는 것도 다 달랐다 그러면 그때부터 공부 잘하는 누구 운동 잘하는 누구 피아노찰 치는 누구 싸움 잘하는 누구로 그 성품에 따라 아이들을 구분하기도 했다
어른이 되고 나면 특히 엄마가 되고 나면 자신의 이름들은 잠시 뒷전으로 밀려난다 대부분 누구 엄마 누구 엄마 라면서 아이의 이름을 앞에 붙여 부른다 요즘이야 직장 생활을 하고 사는 엄마들이 많아서 직장에서는 자신의 이름표를 달고 살지만 아이를 키우는 엄마에게는 아이 엄마라는 이름이 있다 그만큼 아이를 키우는 일은 전념이 되어야 가능하다 온전히 누구 엄마로 살아야 가능하다
그러면서 아이의 학창 시절이 끝나면 대부분의 엄마들은 몇 호 아줌마 키 큰 혹은 작은 아줌마 머리 긴 혹은 짧은 아줌마 뚱뚱한 혹은 날씬한 할머니 얼굴이 검은 혹은 흰 할머니 어디 주름이 많은 할머니 곱게 잘 늙은 할머니 등으로 불리며 대화 속에 등장하고 살아간다
낯선 사람에게야 이런 이름들을 지어 의사소통을 한다는 것은 나쁘지 않지만 늘 보면서 밥도 먹고 차도 마시는 일상 속으로 들어온 친한 사람들 사이에서도 곧잘 이름을 부르지 않고 누구 엄마라는 이름으로 살아가는 것은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사람들은 왜 자신의 이름이 온전히 불리지 않아도 거부하지 않는 것은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물이 강물 바닷물로 변하더라도 그 본성이 변하지 않는 것처럼 자신의 또 다른 이름으로 받아들이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