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詩集『어느 봄날의 일기』
우연
우연히 지나는 길목에서
민들레가 합창을 한다
홀씨를 날리며
노란꽃과 초록잎들이 노래한다
낯선 이들의 눈길에도
고운 마음으로 문을 열고
하늘을 오선지 삼고
파도의 선율을 따라다니며
가늘게 흔들리며
멀리까지 따라와서는
옷깃에서 무심히 지나치는
침묵을 노래한다
우연이라는 말은 설레기도 하지만 위험하기도 하다 우연히 낯선 길을 지나다가 잘 자란 오래된 한그루의 나무를 만나는 일도 우연이고 그 가지 위에서 이름 모르는 아름다운 새를 만나는 것도 기분 좋은 우연이다
누구누구의 자녀로 태어나서 자라는 것도 지금 함께 인연을 이루고 사는 사람들과의 만남도 우연이다 겨울이 지나가는 입구에서 만나는 봄눈도 우연이고 우연히 뒤돌아 본 풍경에서 저녁노을을 본 것도 우연이다 살아가면서 수많은 우연과 마주하면서 그 우연을 깊이 생각한 적은 별로 없다 그야말로 우연이기에 더 아름다울 수 있기도 했다
친구가 보내준 아보카도 씨앗이 툭 터져서 오늘은 새순이 나오려고 한다 베란다의 앵도가지에 새순이 나오고 사과씨앗에서 순이 나온다 우연이 쳐다본 하늘에 구름이 오색빛을 띤다 그냥 우연이라고 하기에는 붙잡아두고 싶은 날들이다
세상에 태어나서 수많은 인연들과 만나고 헤어지면서 마음 상하고 마음 아프고 기쁘고 슬프고 노래하고 울고 지내는 많은 날들이 모두 우연에서 비롯되는 것일까 뒤도 돌아보기 싫은 헤어짐이 있는가 하면 돌아보고 돌아봐도 오지 않는 사람과의 만남을 기다리기도 하는 우연을 가장해서라도 만나고 싶은 사람도 있다 저 멀리 바라보이는 풍경이 어느 틈엔가 나의 배경이 되어 있을 극적인 우연을 기다리면서 살아가는 것이 인생의 묘미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