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시인 시첩

설거지

by 김지숙 작가의 집

시집詩集『일일일 시一日一 詩』



설거지



그릇이 그릇을 이고

층층이 쌓인다


닦고 나면 다시 모여들고

닦고 내보내도

다시 하나 둘 몰려들어

무한 반복되는 그릇 닦기


크고 작은 그릇들이

그릇들 사이를 비집고 앉아

씻겨줄 손길을 기다린다


안팎으로 앞뒤로 뽀드득

제 먹은 그릇 하나

남이 먹은 그릇 여럿

반짝반짝 씻는다



설거지는 신의 노여움을 사서 산 위로 무한 반복 바위를 밀어 올리는 시지프스의 바위를 닮았다 그만큼 하기 싫은 일들 중의 하나가 설거지가 아닐까 설거지 기계가 있다고는 하나 이런저런 이유로 줄곧 설거지를 해 온 셈이다 이력이 난 건지 처음부터 별생각이 없었던지 설거지를 하는 일이 정말 싫었다 집안팎의 행사에서 음식물 찌꺼기가 덕지덕지 붙은 큰 그릇들을씻는 일은 정말 끔찍했다

결혼을 하기 전에는 한 번도 설거지를 한 적이 없었다 '곱게 키워야 곱게 매인다'는 엄마의 지론에 설거지통 근처는 얼씬을 못하게 했다 아무 것도 할 줄 모르는 채로 살림을 시작했다 요리는 먹어본 입맛이 있어 어느 정도 하면 되는데 설거지는 하기가 싫었다 하지만 오랜세월 대소사를 경험하면서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순간들이 오고 그러면 어쩔 수 없이 설거지를 했다 아주 많은 양의 설거지를 한 날은 꿈에서도 하곤 했다

설거지는 생긴 그릇이 다달라서 아무리 깨끗하게 한다고 해도 실력이 곧바로 드러난다 하기 싫어서인지 능률도 오르지 않아서인지 그릇도 곧잘 깨고 뒷처리도 야무지지 못하다 깨끗하게 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어느 순간 더 이상 설거지를 내가 하지 않아도 되는 순간들도 지나고보면 더러 있었다 설거지만큼은 누구에게도 인정을 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이가 들어도 여전히 하기 싫은 설거지에서 해방되지는 못하고 살아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설거지를 해야 하고 하지 않으면 쓸 그릇이 없는 상황이 생기면 한다. 덜 하면 덜 그릇을 깨고 깨도 한다 안 할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설거지를 좋아한다' '하고 나면 개운하다' '설거지는 잘해요' '설거지가 쉬워요'라는 이런 글이나 말을 들으면 설거지를 이런 사람도 있구나 그럴 수 있지 싶지만 공감은 덜 간다


아무리 생각해도 설거지는 산 위로 무한 반복 바위를 밀어 올리는 시지프스의 바위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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