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시인 시첩

빨래

by 김지숙 작가의 집

시집詩集『일일일 시一日一 詩』



빨래



계절이 바뀌면

철 지난 옷가지를 빤다

물속에 풍덩 담긴 추억이

자꾸만 어른댄다


노랫소리도 울음소리도

흔들리는 세탁기 소리에 묻힌다

어둠을 흔들며 먼지를 터는지

요란하게 호통치는 소리가 들린다


거만하던 추억들이

얼빠진 얼굴로 햇살아래 섰다


한 계절이 지나면 추억도

지워지지 않는 얼룩처럼

가만히 제자리에 섰다




빨래를 하는 공식은 정해져 있다 세탁기의 매뉴얼대로 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 손빨래라도 하는 날이면 얼마나 힘이 드는지 모른다 하지만 매뉴얼대로 해도 손목에 남은 때자국은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그런 경우 다시 손문 부분을 애벌빨래해서 다시 세탁기를 돌린다

빨래를 하는 목적은 철 지난 옷들의 보관용이거나 대체로 자잘하게 반복되는 속옷이나 양말 등이다 손 잡히는 것은 자잘한 빨랫감이지만 겨울옷들은 빨아 널기도 쉽지 않다 요즘이야 아예 다 말라서 나오는 세탁기를 사용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 건식기능까지 가진 세탁기가 아닌 다음에는 일일이 꺼내서 펴서 널어 말린다 통돌이 세탁기가 돌아가는 동안은 세상이 온통 소음으로 가득하다 옆에 서 있기만 해도 탈수하는 경우, 혼이 다 달아날 만큼 정신이 없다

세탁기가 돌아가는 동안 통속의 빨래들이 춤을 추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별별 생각들이 스친다 저 옷을 입고 어디에 갔을 때의 기분이라든가 무얼 먹었다든가 뭔가를 흘려 옷을 다 버린 경우든 자잘한 기억들이 따라올라오기도 한다

빨래는 살아가면서 빼놓을 수 없는 일 중의 하나이다 얼마나 효능감 있게 능률적으로 처리하느냐의 관건으로 세탁기의 가격은 천차만별이다 그렇다고 좋은 기능을 다 따라갈 수는 없고 적절한 정도에서 멈춰야 하는데, 일단 사고 보면 그 좋은 기능들을 다 사용하지는 않는 것 같다 자동차도 그렇고 청소기 TV 밥통 제빵기 에어프라이 등의 전자제품은 살 때에는 이런저런 기능이 좋아서 사지만 막상 사놓고 사용하는 정도는 늘 거기서 거기이다 자동차의 경우도 단 한 번도 작동해보지 않고 오랜 세월을 자기가 늘 사용하는 기능만을 사용한다 기계치에 가까운 능력자라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지나고 보면 너무 많은 기능을 갖고 있는 경우는 그 기능들을 제대로 다 사용하지 않고 고장이 나서 버리는 경우도 다반사였다

단순하게 잘 세탁기를 바라보면서 별별 생각을 하게 되고 세탁물을 바라보면서 또한 별별 추억들을 기억하게 된다 빨래를 하는 날은 잡다한 실없는 생각들도 다 빨래통 속에 넣어 깨끗이 빨아 기억도 생각도 리셋한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설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