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詩集『어느 봄날의 일기』
피아노
때로는 바람이 되어
낡은 소리를 따라 떠나고
때로는 빗물이 되어
온몸을 적신다
나뭇잎 위에서도
구름 위를 떠다니면서도
창백한 별을 그리며
천천히 그리움이 밀려들던
그 아아의 손끝은
세상을 향한
작은 문을 열고 닫기를
자꾸만 반복했다
피아노를 잘 치는 친구가 있었다 오래전이라 피아노를 잘 치는 친구는 드물었고 바이올린을 하는 친구는 더 드물었다 웬만큼 잘 살지 않으면 피아노를 가지고 살기도 어려웠던 시기라그랬나보다 지금이야 피아노가 애물단지처럼 여겨져서 조금이라도 고장이 나면 고물취급하며 부숴 버리기도 한다지만 당시만 해도 피아노가 있는 집은 꽤 잘 사는 집이었다
그 피아노가 있는 친구집에 갔다 집은 그다지 잘 사는지 모르겠는데 작은 방을 가득 채운 피아노가 턱 자리 잡고 있었다 외동딸에 피아노 잘 치는 것도 모자라 예쁘기까지 하니 친구들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았다
평소에 서재에 있는 전축에 레코드를 올려 클래식 음악을 자주 많이 들으며 책을 읽던 나는 가끔 언니가 치는 피아노 소리를 듣곤 했지만 반복되는 피아노음들을 좋아하지 않았고 그것을 치기란 쉽지 않다는 것도 너무 잘 알았다
친구집에 가니 피아노가 있고 그 친구는 자랑삼아 피아노를 치는데 그다지 잘 치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나마 듣는 귀는 있어서 친구가 치는 엘리제를 위하여 같은 접하기 쉬운 음악은 외우고도 남을 정도로 들었기 때문이었다 경박함이 들어간 무척이나 가볍고 촐랑 맞은 피아노 소리라 여기고 있는데, "넌 못 치지 못 치지" "쳐봐" 라면서 놀리듯이 방긋방긋 웃으며 얼굴을 코앞에 내밀었다 소심한 성격이었던 나는 <못치는게 아니라 안치는 거야>라는 말을 맘속으로 했다 그럼에도 그 친구가 자기자랑에 취해 막쳐대는 쿵쾅대는 피아노 소리가 언짢았지만 내색하지 않고 잠시 더 놀다가 그 아이의 집에서 빠져 나왔다
<여고 1년생 어린 나이니 그럴 수 있지 그래 그럴 수 있어>라고 생각하며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30주년 기념>으로 여고 시절 그 아이들이 다시 모였다 평소 그다지 친분이 없이 지내다가 만나서인지 그다지 반가운지는 몰랐다 다만 어떻게 살아왔는지가 궁금했다 이것저것 자기가 살아온 이야기들을 했고 피아노를 치던 아이는 여전히 피아노를 잘 치는지 한순간 예전 생각이 떠올랐고 뭘하며 사는지 궁금했다
그런데 묻지도 않았는데, 그 아이는 자신이 피아노에서 일찌감치 손을 놓았고 그 손으로 마트를 운영하며 계산기를 두드린다고 했다 <피아노를 치던 이 손이 마트 계산기나 누르고 있는 걸 울 엄마가 하늘나라에서 알면 얼마나 기절하겠냐>면서 다시 방싯방싯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