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가 파도치지 않으면 물이 썩지 않는다
‘세상살이 파도타기를 어떻게 해왔는지 나도 모르겠다
망망대해를 일엽편주로 앞만 보고 젓다가 칠십에 왔구나‘
‘이모 큰 배를 타야지요'
⌜중략⌟
'그래도 나는 이렇게 살아온 것만도 감사한다.
다만 아이들이 우리 세대의 정신을 닮기를 바랄 뿐이다.’
-이신강, 「파도1」
뭣 하러 가는지
어디로 가는지
말하지 않아도
달리게 하는 너
사람마다 머릿속에
그려진 지도를 토하면서
가는 것일까
보이지도 않고
잡히지 않지만
기억으로 접어두었던 너를
다시 집어서 오는 이들
그리움의 법칙인지 모른다.
-유재봉, 「길」일부
K.버크의 말처럼 길은 지향적 본질 (directionalsubstance)을지닌다 동작(motion)동기(motive)운동(movement)등으로 이루어진 장소(Knneth Burke1955)이다. 길은 그냥 한없이 가야만 하는 그런 이어진 공간으로 인지된다 그래서 중도에 멈추지 못하고 끝없이 걷다보면 희망, 좌절이 숙명처럼 얽힌 채 걷게 된다. 길은 언제나 누군가의 첫 걸음으로 시작되며, 때로는 애환과 연민으로 이어진다.
이신강의 시「파도1」은 바다를 인생길에, 세상살이를 파도타기에 비유한다. 또한 파도는 바다의 방부제이며, 인생을 빛나게 하는 것은 파란(波蘭)이라 한다. 늦은 나이에 조카의 훈계를 듣지만 망망대해를 일엽편주로 올곧게 산 삶을 자랑스럽게 여긴다. 파도를 인생을 살아가게 만드는 원동역으로 여기고 긍정적으로 인식한다
반면, 유재봉의「길」에서 화자는 동일 공간, 동일, 동선 속을 반복적으로 살아가며 입력된 길을 기억하고 보이지도 잡히지도 않는 길을 따라 걷는다 길이긴 하지만 현실에서 걷는 길이 아니라 과거의 기억 속에 걷는 어렴풋한 길의 형태가 나타난다
이 두 편의 시에서 길은 서로 다른 삶을 사는 서로 다른 인생길의 양태로 표현된다. 전자는 묵묵히 혼자 걷는 인생길이자 파도조차도 정신적 의미로 자긍심을 지닌 현실적 삶에서 기쁨을 찾는 길인 반면, 후자는 생활과 직결되는 현실적 길과 내면의 정서를 이끌어내는 생각 속의 길 기억 속의 길이라는 두 층위가 나타난다. 어떤 길이든 용도에 따른 적절성은 중요하다. 각자가 생각하는 길은 그 사람의 사고와 삶을 그대로 드러낸다 그래서 시에서 길이나 실재로 살아가는 인생길조차도 길은 경우에 따라 새로 만들기도, 고치기도 하는데, 시간과 공이 들여야 멋진 길이 된다.
70세 중반이 되어
고향집이 그리운 걸 어찌할거나
⌜중략⌟
팔아먹은 옛집을 찾았다
그 집과 땅이 몇 차례 주인이 바뀌었다고 한다.
나는 그 집안으로 들어가 보지도 못하고
밖에서 정원수 사이로 속을 들여다보고만 왔다.
-김원태,「죄인」일부
출근길 급히 달리는 도로 위고양이 한 마리
연분홍 창자 도로 위에 깔려 있다
꺼지지 않은 마지막 숨결인지
다리를 파르르 떨고 있다.
먹이를 찾아 도로에 나왔을까
떠나간 짝을 찾아 6차선 도로에 나왔을까
-강소이, 「바퀴 아래」일부
벤야민은 삶의 가장 큰 즐거움을 ‘플라너리(flnerie)라고 했다. 도시의 풍경을 향유하면서 뜻밖의 발견으로 기쁨을 느낀 순간을 일컫는다. 우리는 길을 걷고 인생길을 가면서 정서적 육체적 경험을 한다. 첫 출발지이자 삶의 안식처인 고향으로 가는 길이 때로는 슬프고 불안한 장소가 되기도 한다. 이러한 고향 길에는 ‘장소의 성질’(Todd Snow,1967)이 나타난다.
이신강의 시「죄인」에서 화자는 고향을 찾지만 자기 잘못으로 상처가 된 고향집에는 들어가지 못하는 딱한 처지에 놓인다. 집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바깥에서 서성이며 정원수 사이로 보이는 집안을 들여다 보고 돌아서 오는 그 마음은 오죽 아팠을까 그래도 얼마나 달라졌을까 궁금하여 담너머로 바라보는광경은 냉엄한 현실로 그곳에서는 담을 경계로 더이상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과거가 눈앞에서 어른 대는 모습이다
강소이의 시 「바퀴아래」에서 화자는 현대인이 진정성을 상실한 채 질주하는 차에 깔려 죽은 길고양이 주검에 대한 냉정함을 꼬집는다. 사통팔달 도로지만 종착점은 어디에도 없다. 멈추는 곳이 곧 종착지가 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 시에서 ‘길’은 부정적이며 끔찍하다. 화자가 이를 반성하고 자기완성을 이루려는 과정에서 실존의식이 나타난다.
위의 두 편의 시에는 옛길과 새길, 종착지점 유무에 따라 길이 나뉜다. 전자의 옛길은 고향길로 도착점과 자연경관이 있으며 공동체 정신도 남아 있다. 후자의 새길은 인공적 길로 닫힌 공간을 열지만 교통수단에 불과하다. 끝없이 잘 닦인 도로는 효율적이고 질서정연한 이동하는 수단이 되지만 자연경관도 공동체 정신도 도착지점도 사라졌다. 하지만 두 편의 시에서 볼 때 옛길에서는 자신의 잘못으로, 새길에서는 현대인의 욕망으로 하강적 이미지(Descent:진쿠퍼)를 떨쳐내지 못한 채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슬픈 길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