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제천 ·정민호
박제천 ·정민호
인류가 이룩한 문명 가운데 가장 멋진 요소의 하나가 길이다. 인생의 많은 부분이 길 위에서 이루어지고, 길의 형태만큼이나 다양한 삶이 있기 때문에 길의 속성은 흔히 삶에 비유된다. 그리운 길이든 새로운 길든 그 길은 비정착성, 비주거성, 이동성의 의미를 지닌 채, 삶의 내면과 외연을 아우르며 미래를 향한다. 그래서 누구나 길을 나서면 설렌다. ‘길’과 이미지, 성향, 상호 작용 등으로 읽을 수 있는 길은 포괄적 개념으로는 새로운 곳으로 나아가며 실재와 절대를 향하고 초월하는 상승의미(Ascent)와 구원을 뜻하는 하강의미 Descent 그리고 내세를 상징 Passage 하는 동경 Pilgrim을 의미하기도 한다.(진쿠퍼, 1994)
붕새도 봉황도 모두 동물병원에 입원을 시켰기에 완행열차를 탔다. ⌜략⌟
목성역, 천왕성역, 은하철도 간이역마다 죽은 시인들이 마중 나온다.
나이 드니 잠 길도 완행이다. 기적이 운다. 자명종이 울어댄다.
-박제천 「완행열차」 일부
새벽 별빛 속에 전신주의 불빛이 일렬로 서 있다가 열차가 움직이면 뒤로 한씩 물러나고 어둠을 삼키는 열차가 어둠을 뚫고 지나간다. 간혹 차창 안에서 선잠 깬 귀부인의 들뜬 얼굴은 하얗게 부어 있고, 밤새 시달린 듯 저 여인의 치부에서 맑은 샘물이 흘러 너무 칠 것 같다. ⌜중략⌟ 태양이 높이 떠오르고 열차는 어디론가 달리기 시작했다.
-정민호 「새벽차를 타고」 일부
우리는 길을 걷지만 길 아닌 것들과 어울리면서 이전의 삶에서 한 차원 높은 삶으로 성숙하거나 정체성을 확립하기도 한다. 길 가운데서도 기찻길은 비교적 쾌적한 상태로 목적지를 향해 이동 가능한 교통수단으로 한국현대시에서 뿐만 아니라 서구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는 여겨져 왔다. 기차를 타고 가는 동안 창은 밖의 풍경을 안으로 끌어들이고 안의 시선은 밖으로 끌어내는 통로가 된다.(A.K.Ziolkovksy,1978)「완행열차」에서는 남명 가는 길(현실), 생각 속의 길, 죽은 시인을 만나는 길(꿈), 붕새 봉황을 입원시키는(상상) 길의 4가지 층위의 길들이 콜라주 되어 낯선 느낌을 갖게 한다. 나이 든 노시인의 잠길은 길지 않지만 천천히 이어진다 자신이 할 일을 다 하고 만나고 싶은 이들을 만나는 꿈길은 젊어서는 상상도 되지 않는 여행이다 그 삶의 시간들은 기차를 타고 여행을 하듯이 꿈길을 기차의 창밖 풍경이 된다
시 「새벽차를 타고」에서는 귀부인, 안내 방송인 등과 같이 다른 삶을 사는 이들이 ‘기차’라는 동일 공간 내에서 같은 길을 가며 동일한 풍경을 대하지만 서로 어울리기보다 각자의 스마트폰을 꺼내 일출을 찍는 고립과 서로에 대한 무관심과 살아가는 삶의 질과 내용에 따라서 각자의 다른 행동을 하고 있다는 점이 나타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차라는 동일한 시공간을 들어 누구도 그 속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점을 드러낸다 이 두 편의 시는 ‘기찻길’을 달린다는 공통점이 있다. 하지만 전자는 한 사람이 여러 길을 가는 다층 위 구조로 이루어져 복잡한 내면의 심사를 드러내고, 후자는 여러 명이 물리적으로 한 공간에서 함께 가는 단층 위 구조로 단조로운 삶의 방식이 나타나는 점에서 서로가 생각하는 시공간에 대한 관념의 차이들이 대조를 이루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