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청
새싹이 피는 길을 걸으면
비도 내리고 눈도 내리고
꽃이 피고 초록비도 내렸다
비 맞으면 비의 손길에
봄눈이 내리면 순백의 바람에
앳된 꽃이 보내는 애잔한 눈길에
긴 세월 푸른 그곳에 선
길들이 빗방울로 온몸을 씻고는
초록빛 한 아름을 건넨다
봄이 오기 전에도 봄이 오고 나서도 답청놀이를 간다 하지만 이곳의 봄은 소리소문 없이 어느새 와서 올해 답청은 가보지도 못하고 꽃이 피고 여리게 새싹이 돋아 난다 땅은 아직 겨울인데, 나무의 가지 끝은 봄이다
답청을 하면서 늘 많은 생각을 했다 사람의 운명을 사계절과 관련짓기도 하고 혹은 세상만사를 총량의 법칙에 연결 지어 생각하기도 했다 그러고 나면 마음에 위안이 되기도 했다 그리고 어느 누구의 말인지도 모르는 내게 유익한 말들을 기억해 내며 나를 위로하고 새 희망을 꿈꾸며 봄을 맞기도 했다 대체로 그랬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서 살아가는 일은 운명이 아닐까 수없이 만나고 헤어지면서 헤어지지 못하고 여전히 같은 길을 걸어가는 것은 어지간한 인연이 아니고서야 힘들지 않을까 처음 밥을 지으면 찰진 밥이 입안에 감도는 단맛으로 느껴지지만 밥통에서 며칠을 지난 밥을 그저 밥이라는 생각만 들뿐 밥이 맛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사람과의 만남도 마찬가지이다 처음에는 서로에게 수많은 관심과 친절로 새로 지은 밥처럼 마음이 찰싹 들러붙어 있지만 어느 틈엔가 오래 묵은 밥통 속의 밥처럼 무관심하게 된다 그저 빕이거니 그저 친구거니 한다 늘 새로 지은 밥 같은 한결같이 따뜻한 사람이 있을까
드라마 속에 나오는 사람조차도 그 드라마가 끝나고 나면 잠깐의 여운이 있을 뿐 또 다른 드라마의 주인공에 열광하게 된다 사람을 향한 마음이 한결같기는 참 어렵고 그런 마음을 받기는 더 그런 것 같다 사람의 마음은 변하기도 변하지 않기도 하기 때문이다 변하는 것은 사랑이고 변하지 않는 것은 정인가 그 말에도 확신은 들지 않는다
삶이란 풀어쓰면 사람 잘못 키보드를 눌러도 사람으로 될 때가 더러 있다 사람이 사람을 제하고는 삶을 이어갈 수 없다는 뜻이기 때문일까 누구와 함께 하느냐에 따라서 삶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느냐가 결정된다 답청을 하면서도 사람에 대한 생각을 놓지 못한다
자신의 삶의 주변에 있는 사람은 어떤가 유난히 힘들게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냥 바라만 봐도 마음이 흡족한 사람도 있다 그렇다고 내기 흡족하다고 해서 상대도 나를 그렇게 바라볼 수 있을까 서로 그렇다면야 가장 좋은 인연이 아닐까
사람과 사람이 살면서 서로에게 위로가 되고 힘든 어깨 토닥일 수 있다면 언제든 그 삶은 바라만 봐도 서로에게 힘이 되는 존재가 되자만 그렇지 않은 관계는 마치 오레 묵은 밥통속의 밥알 같은 관계로 살아가는 것은 얼마나 고역일까 사람과 사람 사이에 존재하는 것이 사랑이 아니면 끈기를 잃고 서로 누렇게 변해가는 중이라면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그렇게 살고 싶지는 않다 늘 새로 한 밥처럼 쫀득쫀득한 사람과의 관계를 유지하기란 얼마나 품이 많이 드는 일인가 그래도 좋으니 그럴 가치 있는가에 대해서도 지주 고민한다
답청을 하면서 수많은 생각을 품는 것은 초록에 대한 예의가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