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시인 시첩

나무

by 김지숙 작가의 집

나무



너무 오래 한 자리에

서 있지 않았니

이제 그만 집으로 가자


비바람도 얼음 눈에도

꼼짝않고 제 자리를 지키는

숨죽인 운명


사람답지 못한 사람들 숨결마다

흔들리는 어둠 속에서도

단단히 뿌리내고 잎과 꽃을 피우며

저절로 커다란 사람이 되어가는

마을어귀에 사는 정자나무




나무의 마음은 알고 싶으면 가만히 나무를 바라보거나 나무를 안아보거나 나무에게 인사를 하거나 나무의 마음이 되어 보거나 나무가 되어야 한다 눈을 감고 가지를 흔들며 나무가 되어 보는 일 나무 가지에 새가 앉아 소리내어 지저귀는 느낌을 느껴야 한다

아무리 외로워도 나무보다 외로울 수 있을까 아무리 답답해도 나무만 할까 아무리 섭섭해도 나무만 할까 그래서 나무는 도를 닦는 사람처럼 언제나 초연한 얼굴을 한다는 생각이 들 때기도 한다 그래서 침묵하고 있는 저 나무들이 말하는 소리들을 들으려고 한다 나무가 많은 집에서 살았고 그런 집이 그리울 때가 있다 나무에 둘러 싸인 숲이 편안한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깊은 숲보다는 흔들리는 가지가 꽃이 피는 모습이 바라 보이는 숲이 바라보이는 곳에 살고 싶었다

나무 만큼 단단한 믿음으로 한 곳에 깊이 뿌리 내리는 그런 확신으로 살아가고 싶었다 세상 살이는 참 자기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그런 생각이 들 때면 나무를 생각한다 자신의 의지가 아닌 그 지목받은 그 자리에 태어나서 오래토록 서있는 자세로만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못 본 척 모르는 척 천둥 번개 비 바람 눈얼음도 어둠도 빛도 그저 묵묵히 받아들이는 저 초연한 혹은 처연한 삶의 자세를 애써 모른 척 바라본다

너무 많은 것을 봐서 다 외우지 못하면 나이테에 꼭꼭 접어 채워 넣고 다시 보고 듣고 읽고 쌓고 쓰는 삶들을 다시 되새기며 세월을 보내는 침묵하는 생을 가진 존재로, 마을 입구에 등불처럼 서서 오고가는 사람들을 일일이 몸안에 새기는 나무의 생이 지닌 충직함을 본다

 오래 서 있어 더 이상 비바람에 버티지 못하고 비스듬히 누워 해를 받고 달빛을 반기는 느긋한 모습에서 어린 나무의 새순처럼 애틋하게 흔들리지 않고 그저 부드럽고 매끈한 몸짓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매만지며 수많은 일을 하고도 서서히 흐려지는 존재가 된 나무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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