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시인 시첩

넘어지다

by 김지숙 작가의 집

넘어지다



잘 차려입고 길을 나서면

보도블록 틈새에 굽이 끼여

가끔은 넘어진다

무릎이 깨어지고 멍든다

넘어진다고 다 쓰러지지 않는다


넘어질 때 누군가 곁에 있다면

뿌리째 흔들리지 않고

잠시 고요히 휘청이다가

허공을 딛고 다시 일어서고

무안한 미소는 온몸으로 퍼진다


그래 '뭐 이 정도야' 라며

한순간 구겨진 아픔이 환하게 웃는다

기쁨으로 반짝이는 순간은

늘 펄럭이는 간절함에 자란다




길을 걷다가 예기치 못하게 넘어져서 당황한 일은 살다 보면 다반사로 일어난다 바나나 껍질에 미끄러지거나 기름 잘 먹은 대청마루 눈길 얼음길 등에서 훌러덩 미끄러지고 넘어진다 그리고는 덜 다친 경우, 자신의 아픔보다는 주변의 시선에 얼굴이 붉어지기도 한다

그런데 살면서 한번도 넘어져 보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을까 걸음을 처음 배우는 아이들은 걷기 전에 수많은 넘어지기를 반복하고도 기어이 일어서서 걷는다 인생살이도 마찬가지이다 살아가면서 넘어지지 않고 곧잘 살아가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그런 삶이 있다면 과연 잘 살았다고 할 수 있을까 혹 잘 걸을 수 있을지 몰라도 잘 달릴 수 있을까 연약한 풀은 다발로 모여 핀다 그래서 강한 비바람에도 칼날 같은 잎을 세우고 살아간다 그 삶을 함부로 여기다가는 여리기만 한 풀잎에 손을 베기도 한다

일어서서 잘 걷기 위해 우리는 자주 넘어진다 넘어진다고 곧 쓰러져 죽지 않는다 피가 맺히기도 하고 상처를 만들기도 하고 멍이 들기도 하지만 굿굿하게 일어서서 자신이 갈 길을 걸어간다 목표가 있다면 더욱 급히 일어서서 더 빨리 걷기도 하고 넘어진 김에 쉬어가는 이들도 있다

바람이 불면 걷기가 힘들다 길이 험해도 마찬가지이다 그렇다고 걷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인생길이다 서로의 손을 붙잡고 걷는다면 넘어질만하면 잡아주고 쓰러지면 일으켜 세우고 살아가는 동안 힘이 된다면 넘어진다고 다 쓰러지지는 않는다 넘어져도 딛고 다시 일어서면 그만이다 다시는 같은 일을 반복하지 않으면 된다

바닥에 닿아 본 사람은 바닥을 안다 넘어져 본 사람은 바닥을 더 잘 안다 그래서 바닥이 얼마나 아픈지도 얼마만큼의 강도로 넘어지면 어느 아픔으로 가닿는 지 바닥에 가까운 지도 잘 안다 그래서 한번 넘어져 본 사람은 조심을 하고 바닥을 바라보며 걷는다

보고 걷는 것이 모르고 걷는 것보다 낫다 모르고 걷거나 안 보고 걷는 것보다 알고 걷고 보고 걷는 것이 훨씬 안전하다 바닥을 잘 아는 사람과 바닥을 경험한 사람은 더 이상 바닥에 넘어지지 않는다 바닥에 닿기전 허공이 다가오고 그 허공이 곧 바닥이 되는 그 아찔함을 너무 잘 알기 때문에 다시는 바닥과 손잡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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