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복희·남승열·하미애

by 김지숙 작가의 집

언어유희를 시에 사용하는 경우에는 첫째, 서로 상이한 의미를 지닌 하나의 낱말을 대상으로 하거나 둘째 하나의 낱말이 두 가지 뜻을 사용하는 동음이의어를 사용한 경우 그리고 셋째, 하나의 어법이 이중의미가 되는 말놀이 기법 유사한 소리가 나지만 의미는 서로 다른 낱말을 대상으로 하는 기법 등이 있다.




길이 없어 빠져나오지 못해요

노루발로 어루고 달래도 소용없어요

못(池)에 빠진 못이라 여길까요

못내 아쉽기도 했어요, 한때는

(욕구불만인줄 몰랐어요)

양지 바른 곳에 싹을 틔려 애썼어요

더불어 곱게 담아보자 통사정도 했어요

못난인 줄 알고 살았어요

모난인 줄 알고 살았어요

못 박힌 가슴 밀어냈잖아요

못나올 길을 잘라버렸잖아요

길을 이으려고 애쓰지 말아요

당신의 노루발은 더 이상 쓸모가 없어요

(한 때는 화끈거리는 얼굴이었어요)

-이복희 「이 못을 어찌 할까요」



이복희의 「이 못을 어찌 할까요」는 ‘못’을 동음이의화 하는 과정에서 화자가 길이 없어 빠져나오지 못하는 아픈 심정을 언급한다. 그런데 시에서 ‘못’은 가시적 공간과 비가시적인 공간이 함축적으로 나타나는 못(池)에서 못(nail), 그리고 비가시적 공간이 행동이나 작용을 하지 못한다는 의미로 ‘못’이라는 어리석은 사람을 나타내는 ‘못’난이로 나타난다.

또한 이 ‘못난이’ 7화자는 재봉틀 일을 하는 과정에서 노루발이 잘못 되어서 곤란을 겪는 상황으로 이어지고 이어 이 의미는 확장되어 못(池)에 빠진 ‘못’으로 비춰진다.

데카르트는 병을 앓던중 꿈에서 자신의 길을 밝혀주는 세번의 꿈을 꾸게 된다 거기서 과거의 오류에 대한 경고와 자신을 사로잡은 정신이 내습한다는 점 그리고 모든 과학이 지닌 참된가치와 자신을 알아가는 길을 명하는 의미로 받아들인다 그래서 ‘자신이 꿈속에서 두려움을 느낀다면 그것은 유일하게 확실한 참’이라고 말한 바 있다 그에게 삶이란 보는 것(le voir)에서 완전 독립된 정감으로 거리없이 직접적으로 자신에게 드러낸다’고 한다. 눈으로 보는 것 보다는 내면에서 보이는 깨달음에 삶의 중심을 두었다

이복희의 시「이 못을 어찌 할까요」에서 화자는 자신이 못난인 줄 알고 살아 왔다. 그래서 자신의 진심이 우러나오는 말들은 상대에게 더 이상 싹이 틔우지 않는 쓸모없는 말로 바뀌고 자신조차도 상대에게 존재감이 없다는 점을 깨닫는다.

그리고 자신이 쓸모없는 존재라는 자타의 확신에서 더 이상의 상대와의 관계 유지가 어려우며 이를 노루발의 불필요함으로 예를 든다. 비가시적 공간인 화자의 내면적 사유가 함축된 ‘애쓰지 말아요’라는 마음이 저절로 우러나면서 화자는 자신의 처지를 깨닫게 된다. 화자는 어느 순간 자신의 삶을 재봉틀의 노루발이 가는 길에 빗대어 한발짝 떨어진 상황에서 바라보게 된 것이다. 이로써 가시적인 공간인 재봉틀 앞에서 노루발을 사용하는 과정에서 주변의 상황들은 사라지고 데카르트의 말처럼 화자 자신에게 들려오던 말들이 이를 계기로 화자의 내면에서 밖으로 나와 자신의 심정을 표현하고 있다.



햇살이 참 좋다

소리없이 퍼진다

이곳 저곳 말갛게 소독한다

부러진 기억의 말들이 끌어 나온다

소리는 어디가고

형상만 끌려나온다

못이겨 칼이며 심지어 총까지

내 키의 몇 배의 몇 배 말문이 막힌다.

(참말겉말귀속말에단말쓴말막말까지

헛말뒷말편가름말새초롬말꼬리까지

빠지게가득담아서말무덤찾아나선다

말길이있을텐데맑길을알 수 없어

헤매다가떠돌다가천길낭더러지로

잡풀도자라지않는모래사막한가운데

오호라여기구나말무덤이바로여기

씨눈도트지말고숨도아예고르지말고

몇천년흘러흘러서화석이 되거라)

맘구석에 눌러얹은 말들의기억들이

지울수록, 선명하게 돋아난다

등짐을 고스란히 지고

나를 깊이 묻는다.

-남승열, 「말을 묻다」



공간은 장소와 합쳐지기도 하고 그 차이를 생각하게도 한다. 하지만 대체로 어떤 공간에 대해 의미 가치를 부여하면 그 공간은 특별한 의미를 지닌 친밀한 장소로 와 닿는다. 그래서 공간이 한 인간의 특질을 반영하면 장소의 의미로 변화되기도 한다. 이 공간은 실용 공간(Pragmatic Space) 지각 공간(Perceptual Space) 실재 공간(Existential Space) 인식 공간(Cognitive Space) 공상적 공간(Abstract Space)등으로 나누기도 한다.(김광현 1985)

남승열의 시「말을 묻다」에서 화자는 차마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한 말들이 무덤을 이루고 화석이 될 때까지 밖으로 드러내지 않고 내면에서 흘러나오지 못하도록 자신을 묻어버린다. 시에서는 인식 공간을 축소화하는 화자의 내면적인 움직임으로 나타나며 이들은 시간 속에서 느끼는 시각 촉각 등으로 공간 기능들과 결합된다. ‘햇살’ ‘칼’ ‘총’ 등을 통해 공간에 대한 느낌들을 경험하고 이는 감각적 정신활동에서 온 결과물이다. 나아가 화자는 실재 공간 속에서 자신의 경험으로 획득된 공간을 지각한다.

그것은 친숙하지만 지속적인 경험을 포함하는 가시적 공간에서 일어나는 생생한 느낌으로 인식한다. 신체적 움직임으로 장소와 유대하면서 한층 자유로워진 화자는 소리 자체에서 느끼는 공간 감각은 이미 사라지고 더 높은 차원인 비가시적 공간을 드러내는 ‘기억’ ‘말’ ‘말문’ 등을 통해 인지된 가시적 낯선 공간은 화자의 사유과정을 거치면서 인간화되고 가치 중심의 익숙한 장소로 바뀌어간다.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

사람 못자리에서 순덕이를 본다

옷수선하시는 어머니와 다르게 살려고

초등학교 적부터

떠나려 마음 먹었던 너

하루 여덟시간 이상 시계나사를 조이다

미세 먼지를 마시던 날은

불량품으로 골치 아픈 반장 목소리

파르르 날로 섰단다

소나기 잠같이 잘 외워지지 않던 영어 단어를 닮아 생활은 낯설기만 했을까

핸드폰 터지는 소리 활기차다

-하미애, 「수출자유구역을 지나다」



프라타고라스는 ‘인간은 만물의 척도’(Michael Bordt 2003)라고 말했다. 프로타고라스는 개인의 능력이나 감각 정도를 차별화하여 우수와 열등을 구분하는 상대주의를 역설한다. 즉 현명한 지도자는 우월한 능력을 가진 자로 이가 곧 사회의 척도 만물이 척도가 된다는 의미하지만 절대적 본보기의 인간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그의 견해이다. 하미애의 「수출자유구역을 지나다」에서 ‘순덕’은 앞서 언급된 만물의 척도가 되는 우월한 인물이 못된다. ‘시계나사’를 조이고 ‘미세 먼지’를 마시며 뒤늦은 공부로 어렵게 영어를 외는 고달픈 삶을 살아간다.

화자는 가시적인 공간에서 살아가는 고달픈 삶은 한없이 낯익지만 그 공간 속에서 화자가 생각하는 비가시적 내면 공간은 ‘순덕’의 불편한 현대적 삶을 결부지어 표현된다. 인간의 육체는 공간과 장소를 형성하는 토대가 된다. 공간은 움직임 개방 자유 위협으로, 장소는 정지 개인이 부여하는 가치의 안식처 안전 애정 등을 느끼는 고요한 중심으로 표현한다.

공간은 인간이 경험하는 직간접 체험을 통해 친밀한 장소로 변환된다. 그래서 추상적이고 낯선 공간에서 구체적 장소로 전환하여 친밀한 장소로 다가올 때 체험하는 일어나는 감정으로 장소감을 든다(Yifutuan 1999)

육체적으로 힘든 삶을 살아가야 하는 ‘수출자유구역’이라는 노동 공간이라는 가시적 장소는 친밀한 장소로 다가오기를 거부하는 경우가 있는데 바로 이 시에서 가시적 공간인 사회적 현실에서 고된 삶을 벗어나려는 지향점을 찾고자 하여 비가시적인 공간을 인식하고 이에는 화자가 살아가는 삶의 전반적 상황이 감안되어 있어 소시민이 살아가는 삶을 읽을 수 있는 열쇠가 된다.


지금까지 여러 시들에서 표출된 공간에 관해 살펴보았다. 그 결과 첫째 가시적 공간에서 시작된 사유들이 화자의 내면으로 향하는 비가시적 공간으로 들어서면서 깊은 심연으로 빠져드는 사유와 정서를 하게 만드는 매개로 ‘에스프레소’ ‘통돌이’ ‘고드름’ 등과 같은 메타포들이 나타난다.

둘째 이들의 공간은 ‘못’ ‘말’ 등을 들어, 내면적 성찰 및 자기반성을 하고 ‘겨우살이’ ‘수출자유구역’ 등을 통해 현실의 가시적 상황을 포착하고 있으며, ‘초끈’ 에서는 자연 현상의 인식과 세상의 이치를 터득하는 방식을 드러낸다.

셋째 공통적으로 가시적 공간에 대한 제약을 넘어서 화자들의 시선이 비가시적인 공간으로 향하면서 내면과 대화를 하는 과정에서 화자의 내면세계는 끊임없이 확장되고 결국 자기 존재의 정체성을 확인하게 된다. 넷째 이러한 시들 나타나는 공간은 화자가 존재하는 외적인 영향과도 관련되며, 이는 사회적인 면을 감안한 채로 현실 상황을 인식하고 자기 내면과의 관계도 회복하는 계기가 된다.

끝으로 이들 시에 나타나는 낯선 공간들은 각기 다른 경험으로 장소를 특색있게 인식하는데 이는 주변과의 다양한 상호작용의 결과로 볼 수 있다. 또 하나의 이유로는 끊임없이 내면의 자기 그림자(自影)와 외부 환경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들 시에는 자신에게 주어진 낯설고 추상적이며 때로는 불분명하게 자리 잡은 공간들을 자신의 지식과 경험으로 오랜 사유를 거쳐 새로운 시각으로 주어진 공간을 바라보면서 자신만의 특별한 장소로 만들고 길들여 가는 창조적 공간을 완성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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