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종현·정대구

by 김지숙 작가의 집

오동잎에 비는 내리고

집앞 전기줄 위에 새 한 마리 앉아 있네

아까부터 앉아 있었는데 우두커니 앉아 있네

어디를 가느냐고 물으려다 그만 두네

발이 춥지 않느냐고 하려다가 그도 그만 두네

무슨 생각이 그리 깊냐고 마당에 굴러다니는 돌멩이라도 주워서 깨

우고 싶지만

나는 피우던 담배마저 피우고 그냥 들어오네

오동잎에 비는 내리고,

하마터면 너도 오동잎처럼 그렇게 물들고 싶어 그러냐고 되물을 뻔 했네

-구종현 「오동잎에 비는 내리고」전문



일반적으로 비는 하늘에서 떨어진다는 점에서 비는 빛과 동일시되기도 한다.(이승훈 2003) 또 새는 정신 천사 초자연의 도움 환상적 비상을 상징한다(융 1963) 또한 포괄적인 의미로 물을 상징하기도 하고 홍수의 의미로 죽음을 상징하기도 한다

따라서 비는 사람의 무게를 씻어내고 새로운 삶을 내어주는 정화의 의미와 무지개 희망을 내어주는 긍정성 하늘과 땅을 잇는 연결고리 융화를 뜻하는 소통하는 삶과 비가 오면 쉬는 일이 많았던 농경 사회에서 는 휴식의 의미를 지니기도 하고 장마 등을 소재로 하는 작품에서는 아픈 싱황과 소용돌이 시름 걱정을 뜻하며 어지러운 마음과 시대상황을 표현하는 부정적 의미를 드러내는 양가성을 지니기도 한다

구종현의 시 「오동잎에 비는 내리고」에서 화자는 힘겨운 상태로 비를 맞는 작은 새와 대화하기를 자처하기만 정작 화자는 애처로운 새의 모습만 관찰하는데 그친다. 전깃줄 위에 앉아 내리는 비를 모두 맞는 잠이 든 새를 대상으로 여러 내용으로 혼자말로 하다가 깊은 생각에 잠긴다. 자기 내면에 존재하는 풍요로운 화자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 싶었는지 모른다. 하지만 오동잎이 떨어지듯 세상에서 영영 사라지는 존재로 그려진다는 점에서 화자는 비 맞는 새와 자신을 동일시 여기고 여겨 고독한 존재로 남는다.

진쿠퍼(1995)에 따르면 비는 세상을 비옥하게 만드는가 하면 신의 축복이라는 상징성을 지니며 또한 신화 속에서 내리는 비는 천상의 정신적 영향을 상징한다. 시에서 비는 ‘축복’ 혹은 ‘비옥함’ 보다는 화자에게 ‘정신적 영향을 미친다.’

또 시에서 새는 ‘비상’의 의미를 지니지만 비를 맞고 있기에 더 이상 비상하지 못한다. 비 맞는 새와 화자는 내면적으로 대화하는 과정에서 화자가 다가섬으로 새와의 거리는 좁혀지고 화자는 날지 못하는 새에 대해 자신과 동일시하게 된다. 이로써 화자와 새는 겉모습이나 심정적으로는 유사성은 갖지만 화자와 새와의 물리적 거리는 더 이상 좁혀지지 않은 상태로 대상과의 완전한 일체감은 획득하지 못한다. 이 시에서의 비는 화자의 어지러운 마음을 잘표현하는 매개로 사용되고있다



덤벼드는 물 것들과

여기저기 썩어가는 냄새가

태풍과 홍수를 지나

겨우 어렵게 다가온 가을이

아침 저녁으로 아랫도리가 썰렁한 사이

너무 빨리 지나갑니다.

⌜중략⌟

이제 갈대들의 마지막 행(行)도 다 끝내고

빈 바람만 불어오는 아득한 들녘에 엎드려

단 한 움큼만이라도

등줄기 따사한 가을 햇살을 줍는

남루가 보입니다.

-정대구 「가는 가을」일부



시의 이미지는 시어로 그려낸 그림이다. G. 바슐라르는 상상력이 이미지를 만드는 능력인지 아니면 이미지를 변형하는 능력인지를 판단하는 것으로 상상력의 이론을 펼친 바 있다 그는 상상력이 보다 나은 단계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이미지의 형성능역이 아니라 변형 능력이 필요하다고 여긴다 그에따르면 우리가 어떤 대상 앞에서 경이로움에 사로 잡히고 여러가지 몽상을 축적하고 확신하며 그 확신이 지식으로 드러난다 또한 그에게 있어 상상력은 의지보다 더한 생의 충동에서 나아가 심적 생산력으로 여기며 우리는 몽상에 의해 창조된 존재로 본다

정대구의 시 「가는 가을」에서는 '가을'은 하강 이미지를 나타낸다. 시에서 하강이미지는 부정 어두움 우울 암울 쓸쓸함 고독 소외 죽음 좌절 절망 등을 내포하며 낙엽 조락과 같은 소멸의 의미도 지닌다. 이 시에서는 ‘물 것’ ‘썩어가는’ 등과 같은 앞 계절이 지닌 부정적인 이미지들을 내보내지만 새로 맞는 계절이미지 역시 여전히 ‘썰렁한’ ‘줍는’ ‘남루’ 등과 결부된 채 하강과 부정의 의미가 더해진다. 이러한 부정성의 본질은 만물의 근원에 이르는 생각이므로 화자의 삶에 깊이 관여하게 된다.

‘허리를 굽혀 햇살을 줍는’ 신체의 하강 이미지와 결부되고 이러한 하강 이미지는 내면적 부정성을 더욱 심화시킨다. 시에서 ‘남루’는 벗어 던져야 할 삶의 조건이지만 마지막 남은 늦가을을 좀 더 붙잡아두려는 화자의 안타까움은 만나기가 바쁘게 이별을 재촉하고 이를 아쉬워하는 마음으로 ‘남루’를 보게 된다.

엘리엇에 따르면 예술의 감정은 ‘객관적 상관물’로 표현된다. 이는 인간 내면에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대한 상관물을 ‘자연’에서 발견 가능하다는 릴케의 견해와도 일견 일맥상통한다.앞서 수록된 시에서는 서로 다른 양상을 지닌 가을을 만났다. 김석규 양병호의 시에서는 회상의 기법으로 이석근의 시에서는 감상적 기법으로 시적 화자와 대상은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있지만 가을은 긍정적인 이미지를 지닌다.

또 유병근의 시에서 가을은 긍정적인 모습으로, 윤지영의 시에서는 부정적인 모습으로 표현되며 두 화자는 자연과의 일체감을 드러내는가 하면, 구종현 정대구의 시에서 가을은 서글픈 이미지를 나타내고 두 화자는 대상과 거리감을 나타난다. 이들 시에서 화자는 각기 다른 삶의 시공간에 존재하기에 각기 다른 삶의 속도로 늦은 가을을 살아가고 있다. 그것은 ‘회상’ ‘유년회귀’ ‘거리감’ ‘동일시’ 등으로 나타나며 이는 시인의 내면에서 숙성 과정을 거쳐 내면적 완성단계에 도달하고 있다.

이들 시는 공통적으로 가을을 표현하는 과정에서 삶의 본질에 도달하려는 공통점을 지닌다 이들 시에는 시적 화자가 시의 소재와 거리가 가까울수록 시에 대한 화자의 몰입도가 높게 나타나고 화자는 시적 대상과의 유사성을 도출한다. 대상을 표현하는 과정에서 화자의 내면화가 일어나고 개인적 서정은 객관화된 가을 이미지와 더불어 다양한 상상력을 표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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