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우기
심우기
희랍어인 ‘symballein’에 어원을 둔 상징(symbol)은 ‘짝맞추다’라는 뜻이며, 명사형은 symbolon으로 ‘신표’ ‘증표’ ‘표상’에 해당된다. 부신符信의 의미를 지닌 이 말은 영어로 symbol 그리스어로 symbolon으로 표기된다 예를 들면 고구려의 시조인 주몽과 유리왕자의 설화에서 부자가 간직하는 쪼개진 칼 등을 맞추어 보고 상대와 하나임을 확인하는 ‘증표’에서도 상징화가 나타난다. 후에 ‘기호’라는 뜻이 되었고 오늘날은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즉, 어떤 것을 매개로 하여 다른 것을 알게 하는 상징은 그 대상의 대리가 아니고 대상에 대한 표상이 된다.
상징은 매개인 사물과 그 매개가 암시하는 이중적 의미를 지닌 점에서는 비유와 유사한 구조를 지니지만 무한하고 다양한 유추가 가능하다는 점에서는 비유와 차이를 지닌다. 이는 가시적 세계에 연상이 가해져서 불가시적 세계를 표현하는 양식이다. 이는 두 사물이 상상으로 연결되고 결합되는 연상활동에 따라 새로운 의미를 창출한다.
우리 현대시에서 상징이라는 용어는 1910년 백대진의 「20세기 초두 구주 제 대문학가를 추억함」에서 보들레르 모레아스와 같은 상징파 시인을 소개하면서 처음 시작되었다 후에 김억의 「요구와 회한」(신문계 1916) 「프랑스 시단」(태서문예신보1918 ) 등을 통해 베를렌 계열의 감상적 상징주의를 소개했다
김억은 상징주의를 곧 자유시로 인지하였으며 『오뇌의 무도』(1921)를 펴냈는데, 베를렌의 영향으로 상징주의의 본질인 내면의 섬세한 음영이나 외부세계와 자아와의 교감이 아닌 감상으로만 상징주의를 이해한 점에서 기존의 서구 상징의 의미와는 다른 기준을 드러낸다.
하지만 한용운의「님의 침묵」에 이르러서는 ‘황금의 꽃’과 같은 ‘빛나는’ 것을 포착낸 감각과 이를 ‘타락한’ 사상과 결합한 상징성을 띠기에 이른다. 김소월의 ‘개여울’(「개여울」)은 슬픈 여인의 마음을 드러나는가 하면 민족시인 윤동주의 ‘별’(「별헤는 밤」)은 추억 사랑 쓸쓸함 동경 시 어머니를 상징하며 저항시인 이육사의 ‘강철’은 절망을 ‘무지개’는 희망을 상징한다(「절정」)
김춘수의 ‘구름’( 「구름」)은 ‘변형’을 상징하며 전봉건의 「어부」에서는 ‘티 없는 생선’을 ‘획득하기 어려운 보석’으로 존재론적 순수성을 표현한다. 김수영의 ‘벽’(「벽」)은 ‘제약’ ‘한계’를 상징한다. 문덕수의 ‘개미’(「개미」)는 허약하고 무력한 인간을 상징하고 최승호의 ‘변기’(「변기」)는 산업화된 삶 속의 비극성을 상징한다
또한 김규화의 「바람하늘지기」에서 ‘몸’ ‘물결’ ‘비밀’ 등은 어머니의 온기를 상징하며 심상운의 「물고기 그림」에서는 ‘물고기’를 통해 회상과 현실의 공간에서 의식과 무의식을 오가며 새로운 세상을 꿈꾼다 이선의 「( )와 ( ) 사이에」에서 ‘()’는 기호에 해당되지만
시에서는 ()는 ‘닫힘’이라는 고정된 인식에서 벗어나 ‘인간’‘나무’ 등의 사물이 ()로 표현된다 심우기의 ‘실여울’(「실여울」)은 인생사에서 맞닥뜨리는 내면과 현상을 상징한다. 고훈실의 ‘정개밭’(「정개밭」)은 묵정밭으로 ‘버림받은 땅’을 상징한다. 김용오의 시「관세음보살에 대하여」에서 ‘관세음보살’은 ‘엄마의 젖꼭지 바람 젖은 향기’로 상징화된다
위상진의 「세탁기에 대한 변명」에서 ‘세탁기’는 ‘집시’ ‘여자’ ‘국경선’ ‘25시의 기항지’로 상징되며 이혜선의 시「새소리 택배」에서는 산골의 가을 수확물을 ‘새소리’로 상징화한다 간략한 한국시사 속에 드러난 시의 상징적 요소는 ‘무엇을 지시한다’는 점에서는 기호와 동일하다
하지만 기호가 본의와 아무런 관련이 없이 자의적으로 사용되며 사물과 관념 사이의 교차에 의해 이루어지거나 구체적 심상과 추상적 관념이 결합되어 나타난다. 상징은 심상과 관념의 결합이며 동시에 심상이 관념을 암시적으로 환기한다는 점에서 시적 화자의 심리적 상황을 이해하고 해석하는 단서가 된다. 특정한 어휘나 이미지는 시작품 속에서 이질적 두 요소가 결합되고 문맥화 되면서 상징의 기능을 지닌다
말갈기 휘날리며 이 나무 저 나무 뛰어다녔지
장마도 지나간 8월 늦여름
뙤약볕죽을 것 같은 더위
숨막히는 아스팔트
목이 마르다
이파리 말라가는 순간
울다 울다
눈알이 터져 나올 것 같아
둘러보면
수북이 쌓인 옆구리 찔린 울음통
텅 빈 악기만 바람 발길에 차인다
- 심우기 「말매미」전문
우리나라에 자생하는 매미의 종류에는 말매미 참매미 유지매미 애매미 쓰름매미 등이 있는데, 말매미(Cryptotympana atrata)는 ‘왕매미’라고도 하여 한국에서 가장 큰 매미로 소리가 크며 그중 검은 색 개체는 금빛으로 덮여 있다 조선시대에는 ‘매미’를 ‘군자’로 상징했다 김인관의 『화훼초충조화권축』 중 「유선도」에서 매미는 고목의 새롭게 난 가지 끝에 앉아서 바람에 가볍게 흔들리는 모습으로 그려진다. 거처를 소박하게 자리 잡은 군자의 모습으로 표현되어 세상의 일을 벗어나 있다
반면 정선의 「송림한선도」에서는 군자를 상징하는 솔가지를 대각선으로 대치하여 매미를 부각한 점에서 선비의 포부를 간직한 마음을 보여준다 이는 매미의 삶과 형태로부터 군자의 도를 읽어낸 선비들은 청고한 군자의 덕을 상징하여 ‘초선관(貂蟬冠)’이라 하였다
또 서양에서 매미는 빛과 어둠의 영(靈)을 상징하며 빛과 어둠의 순환주기를 상징한다. 그리스에서는 불사의 뜻을 지니는 아폴론 신에게 바치는 제물이다. 트로이왕 라오메돈과 강의 신 스카만드로스의 딸 스트리모 사이에 난 아들 티토노스는 새벽의 여신 에오스가 준 영생을 얻지만 영원한 젊음을 얻는 청을 잊었기 때문에 늙고 쇠약해 결국 매미가 된다
매미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문학의 소재가 되며 두 편의 그림에서는 오랜 인내와 이에 비해 짧은 생애에 대한 허무감을 드러내는 공통점이 있다. 우리 시에서 박재삼의 ‘매미’( 「매미 울음 끝에」 )매미 울음소리를 소나기처럼 숨찬 사랑으로 매미가 소리없이 사라지는 것을 원숙한 사랑으로 상징화 하였으며 안도현의 ‘매미의 울음’「여름」은 뜨거운 여름을 상징화한다
심우기의 시 「말매미」 에서 화자는 매미의 생을 스케치하듯 그려낸다. 8월 늦여름 말갈기를 휘날리며 이 나무 저 나무 옮겨 다니며 운다 그러다 어느 틈엔가 이파리가 말라가는 때에 옆구리 터진 ‘울음통’이 된 채 지상에서 사라지는 생의 허무함을 ‘매미’를 통해 상징화된다. 이 시에서 원관념은 ‘말매미’이지만 ‘빈 악기’ ‘울음통’과 같은 두 개의 보조관념을 가지는데 이들은 모두 ‘죽은 말매미’로 표상되어 화려한 소리들도 한여름을 제압한 큰소리들도 헛되고 헛되다는 의미를 담는다.
시에서 비가시적인 원관념 ‘매미’ 사라지고 보조관념만 드러나면서 더욱 상황을 처절하게 만들어버리는 가시적 표현법으로 상징이 사용된다. 이 ‘울음통’은 원관념인 말매미를 환기하지만 동시에 ‘텅 빈 악기’로 표현된다. 또한 보조관념은 원관념인 ‘말매미를 환기하는 요소로 결국 모든 것은 한철이며 한창인 때가 지나 갈 곳은 잃어버리고 스스로 비어지고 버려지는 점을 강하게 인지하는 상징성을 띤다. 수북이 쌓인 것은 ‘빈 텅빈 악기’로 이는 매미의 탈피각이 아니라 초가을 바람이 차는 죽은 말매미의 몸통을 상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