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혜화

by 김지숙 작가의 집

현대시에서 자연은 대체로 신성한 영토나 신의 창조물도 아니며, 인간과 교감하는 의미도 없다. 인간은 자연의 경이로움을 외면한 채 자연과 분리되어 냉랭한 망각의 관계에 놓인다. 하지만 아래 시의 화자는 자연과의 관계를 회복하고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려는 삶을 몸소 실천한다.



달지도 쓰지도 않은 밍밍한 맛들의

나날이 많아지니 너무 심심해

여남은 평 남짓 남새밭 하나 만들어

콩 심으니 콩 나고

팥 심으니 팥 나네

부추, 호박 들깨, 결명자, 호박, 고구마, 고추

이리 식솔이 많아서야 바람 잘날 있겠나

자나 깨나 고추밭 걱정

날아 댕기다 쉬어 간 새 한 마리

오디 씨 먹고 새똥 싸고 갔는지

심은 일 없어도

뽕나무 한그루 튼실히 자라고

수양버들 두어 그루엔 호박넝쿨이 올라

나뭇가지 두둥실 호박덩이 여기저기

청개구리 메뚜기 도마뱀 굼벵이 땅강아지

밭고랑 옆 논두렁 미꾸라지 우렁이

콩잎 갉아먹고 매운 고추 구멍 내고

아 있는 것 다 모여라

다 먹고 가거라

살아 있는 것 다 모여라

푸른 밥상에 모두 모여 다 먹고 가거라

-이혜화, ⌜The 사랑하기(남새밭)⌟ 전문-



이 시인은 겉과 속이 한결같고 이해심이 많다 가정과 일터를 오가며 주어진 현실에 충실하고 근면 성실한 그러면서도 내면에는 한없는 열정을 지녔다. 정교한 일부터 무겁고 복잡한 일조차 마다하지 않고 숙련된 솜씨로 자기 사업장을 누비며 종일 일하는 모습을 보면 그 분야의 달인답다.

시에서 화자는 이러한 삶을 실천하는 시인과 동일시되어 있고 독자와 함께 삶의 현장에 서 있는 듯 장소의 환기성 마저 강하게 불러일으킨다. 시에서 여러 이름을 나열하면서 결국은 나머지 부분은 흐릿해지면서 소중한 생명성의 통일된 이미지를 생성한다. 솔직한 화자의 삶을 독자에게 적나라하게 전달한다. 그것은 시각적 대상을 묘사하는 과정에서 팔로우 숏(Follow shot 기법으로 처리되어 화자의 시선이 새 호박넝쿨 굼벵이 미꾸라지 등 살아 움직이는 생명체를 좇아간다

또한 그의 시에는 생산물에 대한 보호 의지와 자애, 자신의 생산물에 대한 사랑이 나타난다. 텃밭을 일구는 일은 화자에게 사소하지만 커다란 기쁨이다. 밍밍했던 화자의 삶은 텃밭에서 다양한 자연물과 만나면서 생동감을 가지고 삶을 회복한다. ‘살아있는 것은 모두 모여 다 먹고 가라’는 통 큰 사랑의 메시지도 함께 던진다. 이는 면치레를 위해 행하는 콰키우틀족의 ‘포틀래치 의식’과 달리, 참으로 후한 어미의 마음이다. 자신이 키운 식물에게도 그리고 밖에서 날아온 뭇 생명에게도 소중한 것을 다 내어준다.

이러한 내어주기란 곧 자기 소유를 버리는 행위이다. 자기 것을 버림으로써 그들을 자신의 내부로 끌어들이고 그들과 하나 되는 과정에서 자연의 원형으로 되돌리려는 회복의 염원이 묻어 있다. 화자는 자신의 삶도 힘들고 지친 현실 상황에서 자연을 향해 화자 자신의 내부에서 넘쳐나는 사랑을 나눈다. 그래서 다시 힘을 얻고 다른 이의 아픔에 쉬이 손 내밀어 보듬는 여유도 생긴다. 고되지만 쉬엄쉬엄 나누고 도우며 함께 인생의 강을 건너는 건강한 화자의 모습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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