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민자

by 김지숙 작가의 집

조민자




에리히 프롬은 그의 저서 '사랑의 기술'에서 사랑을 기술art이라고 굳이 말한다 이유는 사랑은 대상의 문제라기보다는 능력의 문제라는 사실을 강조하기려는 의도이며 사랑은 받는 것보다는 주는 데 중심을 두고 있기 때문에 능력으로 표현한다 그는 인간의 존재가 자연에서 분리되어있으며 수치심 죄책감 불안등을 떠안고 살아가는데 그러한 해결책을 사랑으로 정의한다

그는 사랑을 모든 인간에 대한 사랑을 의미하는 형제애, 사랑하는 자의 행복 이외에는 어떤 것도 바라지 않아 살고자 하는 의지를 길러주는 모성애, 심판으로 좌우되는 사랑을 하는 부성애, 육체족 사랑 완전한 융합에 대한 갈망을 담은 성애, 이기적인 사랑인 자기애, 그리고 절대적인 사랑인 신을 향한 사랑으로 나눈다

이처럼 그는 사랑의 종류를 나누고 같은 무보의 사랑일지라도 모성애와 부성애를 달리 받아들인다 무조건적인 사랑이 모성애라면 조건부 사랑이 부성애이다 성장과 연약함을 가리지 않고 사랑하는 것이 모성애라면 조건부로 상벌을 주는 신과의 사랑에 근접하는 것이 일반적인 부성애가 지니는 특성이다

물론 부모의 사랑을 부성애 모성애로 딱 잘라서 말할 수는 없으며 이유는 부성애의 특성과 모성애의 특성 둘 다를 지닌 모성도 지니지 않은 모성도 둘 다를 지닌 부성도 들 다를 지니지 않은 부성도 세상에는 여전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아버지 타계 하신 후

신발장 정리를 하다가

뒤축이 닳아버린

구두 한 켤레를 발견한다

평소 근검절약이 몸에 밴

유행에 뒤떨어진 아버지의 낡은 구두

가슴이 싸아하게 아파온다

제 주인을 담아 싣고

험한 세상 항해했을

생의 돛단배 같은 한 남자의 족적

하루치 일상을 힘겹게 담아서

저녁이면 어김없이

우리집 대문 앞에 닻을 내리던

고단했던 아버지의 한 생애

늦은 저녁상을 차리던

내 여고시절 모습도

늦게 본 막내 동생 옹알이도

고스란히 담겨 있을 것만 같은

뒤축이 닳고 다 닳도록

걸었을 한 남자의 인생행로를

삶의 흔적이 각인 되어 있는

먼지투성이의 구두 한 켤레를

나는 차마 버리지 못하고

가만히 가슴에 끌어안는다.

-조민자, ⌜구두 한켤레⌟ 전문



위의 시를 읽으면서 불현듯 얼마 전 TV에서 본 ‘남극의 눈물’이 생각났다. 남극의 황제 펭귄은 얼음 위에서 암컷이 낳은 알을 받아 자신의 발위에 올려놓고 영하 40도의 추위와 시속 100Km가 넘는 눈보라를 견디며 자신의 배로 덮어 두세 달을 굶주리면서도 끝내 알을 지켜내는 황제 펭귄의 부성애가 눈물겨웠다.

시에서 화자는 아버지의 유품을 정리하면서 타계한 아버지와 서로 다른 세상에 살지만 아버지의 지난 일상과 그 삶의 궤적을 기억으로 풀어낸다. 힘없는 노년의 아버지 같은 ‘낡고 뒤축이 닳아버린 구두 한켤레’를 고단한 삶의 흔적에 비유하는 유의와 본의의 관계가 형성된다. 화자는 그 구두를 껴안는 과정에서 고단한 아버지의 삶이 시인의 뇌리에서 되새김질된다. ‘뒤축이 닳고 다 닳은’ 낡은 구두에서 넉넉하지 못한 삶의 일상을 뒤돌아보고, 힘든 세월을 강한 부성애로 견뎌낸 아버지의 일생이 화자의 가슴에 애잔하게 와 닿는다. 눈으로 읽고 생생한 몇 장면만 뽑아 몽따주 기법으로 그린 몇 폭 그림을 보는 것 같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우리가 해야 하는 일들 중 가장 어려운 일이며, 모든 일은 그것을 준비하는 것(릴케)이라 했다. 그의 말처럼, 지나 온 모든 세월 속에서 화자에게 ‘낡은 구두’는 아버지의 사랑을 확인하는 증거물이 된다.

이 시는 아버지를 향한 애절한 思父曲으로 한 가정의 행복을 지탱하는 무게는 모성애와 부성애의 무게가 서로 다르지 않다는 점을 깨닫게 한다. 처한 현실 속에서 자녀를 위해 못 할 일이 없고, 자녀에게 사랑과 관심을 갖는 자녀를 사랑하는 부성애를 볼 수 있다. 즉, 부모의 사랑이 지닌 공통점은 자발적 헌신의 덕목으로 행복한 가정을 꾸리는데 삶의 목표를 두고 있다는 점에서 또 자신을 모두 내어 던진 희생이라는 공통점을 지닌 존재로 서 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이혜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