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영희

by 김지숙 작가의 집

백영희



시에서 이미지는 오감에 따라 주로 형성되며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을 통해 형성된다 말하자면 시어로 어떤 형상을 그려내고 독자 또한 시어로 시인이 그려낸 형상과 관념을 관련지어 생각하게 된다 이렇게 형성된 관념이나 형상을 이미지라고 말한다 주어지는 이미지가 오관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지 않더라도 머릿속에서 그려낼 수 있다면 이미지에 해당된다 시에서 이미지는 감각적인 인상을 불러일으키는 동시에 사물의 인상과 영상을 뚜렷하게 떠올리는데 주요한 기능을 더해준다

C.Day Lewis는 이미지는 일반적인 언어를 통해서는 맛볼 수 없는 신선미를 빚는 하면 탄력감과 긴축미를 부여하는 한편 표현의 구체성과 독창성을 높이고 정서를 환기하는 장치로 사용되는가 하면 주제를 추적하는 지표가 되고 경험을 구체적으로 재생하거나 감각적 인상을 재현하는 동시에 추상적 관념을 구체화한다



가을의 산골집은 심심하다

사람의 그림자 사라져

낮은 더욱 우울하다

장독에 갇힌 햇살

부룩부룩 콩이 배를 부풀려

발효하는 소리

마당은 가을의 몸짓에 휘감긴다

바람의 씨앗이 숲에 떨어져

색색의 열매를 뿜어

가을의 동굴에 갇히는 여자

바람에 따라온 뼈의 삐걱거림

고통의 껍질에 기생하는 외로움

태어날 때의 울음이

주머니마다 불룩 채워져

여자는 가을의 벽화가 되다.

-백영희 ⌜가을 여자⌟ 전문



위의 시는 두 이미지 속에 세 여자가 나타난다. 한 여자는 동굴 속에 갇혀 있는 현재의 여자이고, 다른 한 여자는 과거의 여자로 이미 벽화로 남아 있고, 마지막 여자는 그런 현재와 과거의 여자를 바라보는 시적 화자 자신이다. 화자의 심정에 비친 산골집은 심심하고 우울하다. 장독의 콩은 현재 햇살로 발효가 진행 중인데, 이는 화자의 심정에 다소의 희망이 남아 있고 여전히 고민중이다.

여기서 시의 시점은 바뀌고 형형색색의 바람과 열매로 동굴에 갇힌 화자는 온 몸의 뼈가 삐꺽거리는 고통 속에 놓인다. 그런데 그 원인은 바람이다. 외부적 시련에 괴로워하는 이미지의 ‘바람’이 나타난다. 그런데 이 바람은 긍정과 부정을 모두 지닌 바람으로 그렇다고 화자가 그 바람을 누릴 수도, 버릴 수도 없는 입장이다. 바람’은 공기의 움직임을 의미하며, 공기는 아주 작은 빈 공간도 채운다. ‘바람’은 활동하는 공기이자 실체이다. ‘바람’은 붙잡을 수 없는 존재이며, 형체가 없으나 공간을 지배하고 과거, 현재를 하나로 묶는 속성을 지닌다. 또 대상에 부딪쳐서 그것을 움직이는 힘을 갖는다.

시에서 화자는 외부에서 불어오는 바람으로 생존마저 고통이며. 그 바람에 기생하는 자신은 전혀 행복하지 않다. 그리고 ‘가을’이라는 동일 어휘를 반복 사용하는 가운데 산골집, 몸짓, 동굴, 벽화가 도드라진 무늬로 선명하게 그려지는 대신 그 밖의 이미지들은 후경으로 물러나 ‘가을’의 통일된 이미지를 형성한다.

다른 하나의 이미지는 과거의 화자이다. 태어날 때 울음이 주머니마다 채워진 슬픔의 표상인 화자는 결국 벽화같은 죽은 존재로 지낸다. 결국 과거의 여자와 현재의 여자 그리고 그런 두 여자를 객관화시키는 화자는 동일 인물이라는 점을 알게 된다. 한 여자가 살아 온 우울한 삶의 이야기를 自書詩 형식의 이 시가 지닌 주된 감정은 ‘자기애’로 자신을 향한 매우 엄숙하고 속 깊은 자기 연민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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