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정화
무드셀라 증후군Methuselah Syndrome은 좋은 기억은 자주 회상하고 나쁜 기억은 빨리 지워버리려는 심리적 현상을 말한다 이 증후군은 구약에 등장하는 969세까지 살았던 무드셀라의 사람을 모델로 삼았다 다른 사람들보다 더 오랜 세월을 살다간 만큼 수많은 상황을 거졌을 것이고 다시 돌아가고 싶은 날들에 대한 심리현상이 자연히 드러 났으리라는 판단에서 이름붙여진 것으로 보인다
과거를 떠올린다고 해서 현실에 별반 달라지는 것은 없다 그렇지만 뜻밖의 어려움에 맞닿았을 때에는 이러한 긍정적인 과거를 회상하는 것은 암울한 현재의 상황을 벗어나려는 힘을 주는 희망적인 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 매사를 냉정하게 바라보는 사람이나 부정적인 생각으로 사는 사람들보나는 희망적이고 좋은 기억을 떠올리는 사람들이 훨씬 현재와 미래에 대해서도 긍정적인 시각을 지닌다는 것은 심리학자 콘스탄틴 세디키데스Constantine Sedikides 의 '비관적인 감정을 해소하고 울적한 마음을 극복하는데에는 무드셀라 증후군이 도움이 되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무드셀라 증후군을 가진 사람들은 현실 극복은 물론 미래 계획을 수립하는 일도 더 잘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는 그의 실험 결과에서 언급한 점을 통해서도 잘 읽을 수 있다
까까머리 소년이 건네준 감꽃
‘니는 감꽃보다 예뿌데이’
그 한마디 장롱 깊이 숨겨 놓았다.
세월에 바스라지지 않은 채
해마다 감꽃 필 때 감나무 아래서
허허로운 마음 달랬네
외로울 때 감꽃 살짝 꺼내 공기놀이하며
혼자 그 말 떠올리며 미소 지우네
사춘기 소녀 적에
주렁주렁 감꽃 목에 걸고
꽃구름 속에 그네 뛰며
하늘을 날았네
아름다운 감꽃을 생각하며
푸른 감의 떫은 맛
유년의 무지개다리 넘어본다네
-강정화, ⌜감꽃 이야기⌟
위의 시⌜감꽃 이야기⌟ 에서 화자는 감꽃으로 공기놀이를 하거나 감꽃 목걸이를 하고 그네를 뛰는 당시 사춘기 소녀들의 놀이 모습을 반영한 고현학적 요소가 다소 가미되어 있다.
화자에게 감꽃과 첫사랑의 추억은 늘 되새김질을 동반하여 화자를 찾아온다. 감꽃의 꽃말은 자연미, 혹은 ‘좋은 곳으로 보내주세요.’라고 한다. 화자는 사춘기 자신을 감꽃보다 예쁘다고 한 소년의 말을 평생 장롱 속에 둔 듯이 비밀스럽게 간직하면서 외로운 날이면 꺼내보곤 한다.
시에서는 ‘의미의 감추기’와 ‘의미의 드러내기’ 과정을 겪으면서 소녀는 성인이 된다. 하지만 성인이 된 후에도 추억은 남몰래 드러내기와 감추기의 과정을 반복한다. ‘의미의 감추기’ 기법은 일반적으로 그림 그릴 때에 스푸마토 기법(공기 원근법)으로 사용된다. 이는 먼 것을 흐리고 탁하게 하고 가까운 것을 진하고 선명하게 표현하는 기법이다.
시의 화자는 감춰두었던 감꽃을 꺼내보고 감추는 반복적인 행위에서 위로받고 고단한 현실로 돌아온다. 이러한 첫사랑의 기억은 감꽃 필 무렵이면 반추되는 과정이 더 강화된다. 이는 자이가르니크 효과로 미완성 과제에 대한 기억이 완성 과제에 대한 기억보다 강하게 남는 효과를 일컫는다. 즉 이루지 못한 첫사랑이 성공한 사랑보다 더 강하게 기억에 남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시의 화자가 경험했던 플라토닉한 사랑이란 정신적인 의미의 숭고한 사랑으로 현실적으로 보면 실현 불가능하다. 시에서 사랑은 ‘감꽃’이 매개가 되어 추억을 되새김질하는 첫사랑이다. 화자는 사춘기적 추억을 외로울 때면 추억 속의 ‘감꽃’을 꺼내 보면서 힘을 얻는다.
힘든 세월을 보내고는 하는데, 이는 유년시절의 소년과의 짧은 대화가 위안이 되었다. 이 정경은 마치 앨마태디만이 그린 그림처럼 전원의 풍경을 배경으로 일상생활 장면을 담고 있다. 그런 화자는 유년의 과정에 벗어나 비로소 생의 큰 강을 건넌다. 유년시절부터 감추고 꺼내보는 과정에서 허망은 버릴 수 없는 친구가 된다.
현실적 ego와 충동적인 id의 갈등을 거쳐 귀중한 ‘감꽃’의 추억을 버렸을 때, 마침내 비어 있어 행복한 삶의 방식을 찾게 된다. 이처럼 유년시절의 위로가 되던 긍정적 의미의 ‘감꽃’은 세월이 흐르면서 넘어서지 못하고 그 추억을 쉽게 벗어버리지 못하는 ‘벽’이라는 부정적인 존재가 되어버린다.
하지만 결국 화자는 ‘감꽃’을 놓아버리고 그 버리기 작업은 ‘무지개 다리’ 저편으로 가는 새로운 길을 여는 매개가 된다. ‘감꽃’이 지배적인 이미지가 된 이 시에서 화자의 소녀적 감상은 개인적 체험과 운명을 받아들이면서 정체성을 찾게 되고 재생적 심상으로 나아간다. 하지만 화자는 소녀적 감상에 그치지 않고 '떫은 맛’과 회상을 엮어 과거에서 벗어나 생산적인 상상에 속한 시적 현실로 돌아선다.
카렐 차레크는 언어 창조자를 가장 훌륭한 작가로 친다. 말하자면 언어를 새롭게 창조해서 쓰는 일이 바로 작품의 창조적 가치를 좌우하기 때문이다 말이다. 개인적인 시정신이 머무는 환경은 그들이 각자가 바라보는 시세계에 따라서 제각각 달리 나타난다. 그래서 동인 활동을 하는 시인들의 감수성과 상상력 또한 종종 서로를 닮아가기도 한다.
왜냐하면 시인의 상상력이란 ‘인간 영혼의 모든 기능을 그 상대적 가치와 위험에 따라 서로에게 종속시킴으로써 인간의 전 영혼을 활동케 하는 자의 것이며, 그것은 또한 통합의 분위기를 조성하는가 하면 시정신을 확신시키고 서로를 유화시키는 작업’(코울리지)이기 때문이다 이로써 긍정적인 회상의 과정을 거친 화자의 어린 시절 추억은 현재와 미래로 나아가는 힘이 된다는 점을 확인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