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동삶기

by 김지숙 작가의 집

고동 삶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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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가 마을 끝자락에는

삽으로 퍼도 될 만큼 고동이 지천이다

고등을 삶을 때는

오롯이 부어야 서서히 오르는 따뜻함에

고동이 슬슬 기어 나와 까먹기 편하다

고동 삼긴 물이 좋다고

요동치며 치대면 깊이 들어가 까먹을 수가 없다

고통도 단박에 끝내거나

따스함 속에서 파묻혀

아픔을 모르고

아련히 떠나보내야 한다.




'고동 삶기'는 '고통 삶기'라는 생각에 닿으면서 쓰게 된 시이다 낚시여행을 간 곳인데 평생 그렇게 많은 고동을 본 곳은 처음이었다 정확한 위치는 이미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사라져 다시 찾기 어려웠다 그 뒤 지나는 길에 몇 번을 들렀지만 태풍 매미 이후 잘 정비된 해안선 덕분인지 그곳은 흔적 없이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산에서 내려온 산물이 자연스레 바다로 흐르는 강물과 바닷물의 경계가 애매한 기수지역이었다 돌반 고동반으로 아니, 고동을 한 움큼 잡아 돌을 골라내는 편이 더 쉬은 돌밭이었다

이보다 조금 적은 양의 고동을 본 것은 초등학교 다닐 무렵 거제도 이모집에 가서였다 거기 바닷가에서도 정말 많은 고동이 있었다 이모는 커다란 대야에 바닷속 고동과 모래가 섞인 물을 담고는 흔들면서 고동만을 남기곤 했다

그 기억이 고동에 대한 신기함으로 남아 있었는데 , 그날은 이런 기억을 완전히 덮어버렸다 그 무지하게 많은 고동을 비닐봉지에 조금 담아 왔다 씨알이 굵고 먹을만한 것으로만

그런데 고동을 삶았다고 해서 다 먹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고동을 삼는데도 방법이 있었다 고동살이 밖으로 나와야 쉽게 까먹는데 깊이 숨어버린 고동살은 단단한 껍질을 깨야 비로소 먹을 수 있었다

놓친 게 있었다 단단한 껍질 속에 숨어 있는 고동의 마음이다. 얼마나 힘들었으면 저렇게 깊이깊이 숨어들었을까 절대로 잡아 먹히고 싶지 않은 마음이 거기에 꽁꽁 숨어 있었다 그 마음을 본 게 싫었다

그래서 이후로 고동은 잡지도 먹지도 않는다 고동을 잡아서 삶는다는 것은 고동들의 고통을 삶는 것이라는 생각을 했기에.

고동을 권하는 나에게 내가 이런 말을 하면 듣는 지인들은

'배 고파봐라 그게 있나'

'그런 적 없으니 그 생각을 하지'

' 팔자 좋은 사람들 생각이다'

'우리는 없어서 못 먹는다'

라고 말들을 한다

그럴지도 모르겠다 그 말이 맞을지도. 비록 먹이사슬 아래에 있지만 굳이 나는 안 먹어도 될 것 같다

그런 생각을 할 필요는 없지만 그 살을 먹으면서 깊이 숨어버린 고동의 마음을 다시는 생각하고 싶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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