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필영

by 김지숙 작가의 집

김필영



몸은 선험성을 지닌다. 그래서 몸과 주변은 동시공존의 상호 연결체로 살아간다.(조광제, 2003) 불교에서 空이란 ‘속이 텅 빈’ ‘비어있’다는 의미로. ‘空’은 ‘緣起’를 전제로 사물이 상호 의존적 관계로 이루어지며, 일체의 ‘空’은 지혜의 완성에 도달한 경지에서 얻어진다 만물일체는 직접적인 원인인 인因과 간접적인 원인인 연緣으로 생겨났고 그 인연因緣에 의해 고정불변하는 실체가 없다는 사상을 가리키며 우주만물은 시공간의 인연에 따라 변한다




누군들 말리고 싶은 속 없으랴

댓돌 아래 드러누워 매운 생 을 풀어 말리고 있다.

미궁같이 깊은 속, 땡볕 속에 풀 수 있는 답 들어 있을까

두터운 살, 매움 버리면 시린 속 가벼워질까

멍석 위에 땡볕수행 중인 고추들, 하안거 끝나면 가벼워져

-강수니 「땡볕수행」일부



옥빛 토슈즈를 신고 군무를 펼치다

점프 직전 멈춘 아기 발레리나들

일제히 흑암의 높이를 올려다 본다

⌜중략⌟

뒤틀린 속을 어루만져주리라

콩나물을 끓일 때

비와 흑임의 맛이 다 익을 때까지

솥뚜껑을 열어보지 말일이다.

-김필영 「콩나물」일부



삼라만상은 전부 공空으로 돌아가지 않는 것은 없으며 우주의 모든 삼라만상은 이 공에 해당되며 비어있지만 결국 삼라만상을 아우른다 하지만 인연에 따라서 생겼다가 소멸되며 실체가 없으므로 고정된 가치를 부정한다 그런데 그 부정하는 것은 허무와는 다른 자유롭게 존재하는 방식을 시사한다 존재를 부정하는 것은 존재 자체의 부정이 아니라 실체를 가진 아我가 없으며 이는 무無나 허무와는 다른 의미를 갖는다

강수니의 시 「땡볕수행」의 화자는 말라가는 고추를 수행 중인 스님에 연관짓는다. ‘탱탱하게 붉은 몸’이 ‘매운 생’을 말리는 중이며, 매움을 버리면 해탈에 이르리라 한다. 한편, 사물은 변하지만 사물을 지각하는 몸은 영속성을 지닌다. 몸은 만지는 주체와 만져지는 대상이 한 몸 속에 공존한다. 그래서 만지는 몸은 만져지는 세계 속에 존재하지만 만지는 몸은 세계를 벗어나 있다. 몸은 주체도 객체도 아닌 이들 모두를 공유한다.(한전숙, 1984,)'

김필영의 시 「콩나물」에서 '콩나물''은 흑암 속에서 토슈즈를 신은 발레리나의 군무와 점프 직전에 멈춘 모습으로 연상된다. 콩나물이 끓을 때 비를 맞고 흑암의 세월을 견딘 만큼 맛이 다 우러나는 만큼 그 때까지 열지 말라고 한다. 이에는 자발적으로 자성을 터득하여, 몸에 대한 편견과 관습 참견을 버려야 한다는 소박한 체현이 내재되어 있다

결국 이 세상의 만물은 집착을 내려 놓아야 한다는 것과 동시에 이를 꿰뚫어 내는데 있으며 무엇이나 그대로 두어 마음이 흘러가고 시간이 흘러가고 생각이 흘러가서 스스로 그 때에 이르면 모든 것이 산도 강도 바람도 인생도 되어 저절로 무르익을 것이니 모든 것이 흘려 가도록 흘러가서 비로소 제구실을 하도록 놔둬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앞서 언급된 두 편의 시에서 말하고자 하는 의미는 불교에서의 삼라만성이 끝내는 모두 공空으로 돌아간다는 의미와 장자의 도에서 인생은 영원토록 변하며 흘러가는 것이기에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없으니 그대로 흘러가도록 둬야 도리어 온전히 벗어난다는 의미를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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