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채길 걷다

by 김지숙 작가의 집

부채길 걷다



켜켜이 시루떡을 쌓다가

오래 묵은 책들을 쌓다가

갸우뚱 대체 얼마나 오래

저 기울어진 모양새로

바닷물에 몸 담그고 있는 걸까


때로는 검은 돌덩이로

때로는 깨끗한 나무토막으로

때로 계단식으로

부채꼴모양을 한 주상절리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비바람에 깎이고 가라앉아도

반쯤 기울어진 채

다시는 변하지 않을

산산이 갈라지고 낱낱이 엉겨

한자리서 기다리는 모진 마음



정동진의 묘미를 찾는다면 깨끗하고 조용한 바닷가뿐 아니라 시간을 좀 더 낸다면 부채길을 걷기를 추천한다 모처럼 날이 좋고 공기도 깨끗해서 부채길을 걸었다 이 길은 길 전체가 주상절리로 이루어져 있다

대부분의 주상절리는 기둥형태나 벌집모양이며 현무암이나 조면암 안산암에서도 나타난다 풍화와 침식으로 오랜 세월 해안이나 그 주변에 나타난다 그런데 정동진의 부채길에서 만나는 절리節理는 재주도 장방폭포 천제연 폭포 철원 직탕폭포 연천 재인폭포 포천 비둘기낭폭포 남양동 국수바위 등에서 보이는 절리의 형태와는 다르다

이들이 수직으로 나뉘어 있다면 정동진의 절리는 45도 각도 정도를 지키는 비스듬히 기울어진 형태로 대부분이 이루어져 있다 가까이 있는 산들도 대부분 절리 형태를 이룬다는 특징이 있다 태풍과 폭우의 피해를 입어 꽤 오래동안 이 길이 닫혀있었지만 최근 봄이 되면서 다시 길을 열었다

바닷바람과 파도와 바닷물이 만들어낸 천혜의 산소를 폐부 깊숙이 들이마시는 것이 무엇보다도 좋았다 아무도 들어가지 못하는 바닷가 위로 방부목과 철제로 반쯤 허공에 떠 있는 채로 만들어진 길을 부채길을 걷는 것은 고소공포증이 있는 사람에게는 약간의 소심함을 가져온다 하지만 아래로 보지 않고 바다를 보고 걷는다면 크게 문제 될 것은 없어 보인다

처음 썬크루즈에서 시작되는 내 리치 닿는 방부목 계단이 다시 돌아올 즈음 지나치게 높아 많은 고통과 인내를 요하는 점이 있긴 하지만 쉬엄쉬엄 오른다면 크게 문제 될 것은 없어 보인다 사람이 살면서 부채길에 관심을 두고 사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하지만 정동진의 부채길을 한번 걷고 나니 이 일대의 지형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전체적인 지형이 부채꼴이고 2300년 전의 지각변동을 관찰할 수 있는 국내 유일의 해안단구라는 점에서 동해가 어떤 경로로 탄생되었는지 알게 된다 특이한 점은 해안의 여러 크고 작은 돌들이 다양한 모습을 한다는 것이다 검은색을 띤 흑연덩이처럼 보이기도 하고 하연 백설기덩어리처럼 혹은 책을 쌓아둔 것처럼 시루떡을 쌓아놓은 것처럼 혹은 구멍이 숭숭 뚫려 바람떡 같기도 했다

다양한 모양을 하고 있는 바위들을 보면서 날 것의 자연이 주는 신비로움 파도소리 뻥 뚫린 것 같은 통쾌함 제주보다 낫다는 관광객들의 이 말 저말 들을 들으면서 왕복 5.8킬로의 거리를 한 시간 반 만에 걷고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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