흘러가는 것
언제부터인가
세월이 흘러가는 소리가 들린다
만지고 거두고 챙기는 일들이
무심코 지나간다
꽃이 피고 지고 열매 맺는 모습이야
눈여겨보면 누구나 보지만
밤새 뒤척이던 그리움이 구름처럼 흐르고
좋은 날들이 바람처럼 떠나가고
아름다운 사람들이 저 어디까지 흘러
다만 해맑은 강 끝의 기억 속에서
깊은 생각의 바다에 이르러
울컥 다시 그리움이 되어 사라지는
그 흘러가는 소리들이 들린다
우리는 늘 흐르는 것들 속에서 살아간다 하지만 우리는 흐르는 것에 이미 너무도 무감각하다 그나마 눈에 보이는 것에는 관심을 두고 눈을 돌린다 강물 구름 바람 그러나 눈에 보이지 않는 세월 시간 마음 등에서 우리 더 많은 그리움을 실어 보내고도 흘러간다는 사실을 잊은 채 살아가고 있다 흘러가지 않는 것이 어디 있을까 이미 흘러가는 것을 멈추었다면 그것은 그 자리에서 썩거나 사라지거나 아무 것도 아닌 채로 순전한 제 기능을 상실한 오염된 상태일 것이다
흘러가는 그 무엇을 막을 길은 없다 세월을 막지 못하고 인생을 막지 못한다 매듭짓지 못한 일들도 해결되지 못한 사건들도 세월이 흐르면서 잊히거나 매듭이 삭아 저절로 풀리기도 한다 하지만 사람의 마음에 맺혀있는 매듭은 잘 삭지 않고 죽음까지 가져가기도 한다
펄펄 끓던 마음들도 어느 틈엔가 기억 속에서 사라지고 마는 것인데, 사람들은 자질구레한 일들로 마음을 끓이고 헤어지고 만나고 그러한 일들에 입방아를 찧는다 그리고 그것은 의도적으로 퍼뜨려 상대를 곤란하게 한다 한번쯤은 그 자리에 자신을 넣어 보면 어떨까 라는 생각을 한적도 있다 흐르는 것은 제자리를 지키지 않는 듯 보이지만 한 번도 제 자신을 떠나지 않고 흐른다 가만히 머물러 있기보다는 끝없이 흐르면서 스스로를 지키고 살아가는 법을 깨닫는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세월이 흐르는 소리가 들린다 사람의 마음이 흘러가는 것도 보이고 일의 추임새가 어디로 흘러가는 지도 느껴진다 젊고 힘이 넘치던 때에는 모든 것이 자신을 중심으로 돌아가고 그 중심에 내가 서 있기를 바라고 그러지 않으면 참아내고 버티고 이겨내는 것이 힘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가면서 그런 모습들이 시간 속에 객관화되어 담긴 채 자연스레 흘러가는 모습들을 보게 된다 애써 힘들게 쫓아 가지 않아도 되고 아등바등하지 않아도 살고 가는 것들은 가도록 그저 바라보기만 하면 되고 떠나가는 사람은 그렇게 하도록 두면 마음이 더 편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물론 어느 선에서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아무튼 사람살이라는 것이 흐르는 물처럼 비람처럼 구름처럼 강처럼 산을 휘감다가 마을을 돌다가 추억을 그리다가 묵묵히 상처도 고통도 불안도 번민도 모두 내려놓는 상태에 이르면 처음 그때로 되돌아가는 것. 가장 낯익은 처음의 그 모습으로 돌아가게 되고 그것이 가슴 따뜻한 삶이 아닐까라는 생각도 가끔 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