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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욱진 「무료급식소」

by 김지숙 작가의 집

A. 수스만의 『영혼을 깨우는 12감각』에 따르면 인간의 감각을 촉각 생명감각 고유 운동감각 균형감각 후각 미각 시각 열 감각 청각 언어감각 사고감각 자아감각 등이 있으며 우리의 몸은 행동 양식과 감각들이 각각 연결되어 있고 이러한 감각작용을 받아들이고 행동하는 근원에 대한 인식하는 기관들이 따로 있다.

그 중에서도 후각은 존재의 가장 근원적인 감각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인식하는 시작이자, 자신의 존재성을 둘러싼 경계와 종족에 대한 인식을 부여하는 감각이다. 한 마디로 냄새가 자신의 근원적 정체성을 일깨워주고, 제 자신이 속할 집단과 영역이 어디인지를 알려주는 표지가 된다.(A. 수스만 2007)



수정 못둑을 돌다보면

둑 가에 죽 둘러서서

새우깡을 새우처럼 방생하는 이들이 있다

그 소문은 일파만파로 퍼져

눈치코치 없는 꼬맹이 물고기들도 다 안다

온종일 북적이는 무료 급식소

새우깡 몇 물 속으로 던져주면

금세 새우들은 꼬리를 흔들고

어디선가 그 냄새 맡고 몰려온 물고기들은

새우 한 마리 먼저 낚아채려고

죽기 살기로 달려든다

개중엔

동네건달행세하며

떼지어 몰려다니는 패거리족도 있고

새끼입에들어가는 새우

꼬리깡물고 뜯어먹는 얌체족도 있지만

그래도 부지기수는

자기새끼 먹여 살릴 땟거리 구하려고

한평생 헤엄치며 돌아다닌 나 많은 물고기들

물 한모금으로 아침 때우고

오늘도 어딜 가서 밥값을 하나

허구한 날 고민했을 이상화 시비 앞에서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귀동냥만 실컷 하고 허기진 듯

물위로 힐끔 고개 내밀다

찰칵 착각

밥때인줄 알고

소복 모여드는 수성못둑 둑가

-김욱진 「무료급식소」전문



위의 시에서 화자는 수정못둑 가에서 새우깡을 방생하는 사람들을 바라본다 화자는 사람들이 던지는 새우깡을 향해 달려드는 못둑 안의 물고기들을 바라보면서 인간사와 비교하여 만감이 교차하는 화자를 만난다.

화자가 서 있는 장소인 수정못둑의 어느 장소는 못 둑 안이 잘 보이는 일반적 통념으로 인식되고 공개된 장소인 ‘토포스’로 현장성을 지닌다. 물고기는 떼 지어 다니며 한 마리가 인솔하여 움직이는 모습에서 임금과 신하 장수와 병사 스승과 그를 따르는 제자의 관계를 드러낸다.

또 물과 더불어 물고기는 생명을 상징한다. 하지만 새우깡 방생에 몰려든 물고기떼를 바라보는 화자의 생각은 ‘수정못둑’을 돌다가 ‘무료급식소’에 사람들이 북적이듯이 물고기들도 각자의 살아남기 위해 다양한 생각을 품고 ‘수정못둑’으로 모여들었다고 본다.

물고기들이 움직이는 장소이지만 그 장소는 이미 화자의 내면으로 들어가 화자자신을 바라보고 삶의 정체성을 생각하게 만드는 장소로 탈바꿈하게 되고 이는 곧 기존의 사용가치에서 벗어나 새로운 장소에서 ‘아토포스’로 바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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