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스토텔레스는 사물이 처해 있는 공간으로서 ‘토포스(topos)를 ‘장소’라 한다. 현존하는 사물은 자신만의 고유 공간을 점유하는 곳이 ‘장소(topos)인데, 용기처럼 물체를 감싸는 표면 물체와 함께 존재하며, 물체와 물체를 둘러싸는 ‘장소가 동시에 존재한다. ‘장소로서의 공간은 자연적 우주적으로 정돈되어 있으며 필연적으로 유한하다. 작품에서 장소와 연관된 요소들이 작품을 전개하고 개입하는 과정을 해석하는 방식을 통해 작품의 진정한 의미를 읽어내게 된다
밤늦게 집으로 돌아오시던 부모님
나는 어둑할 때까지 교실에 남아 책을 읽었다
창밖에 눈이 내리던 날
어깨를 감싸는 따뜻한 손
국어 선생님은
내 손을 잡고 교무실로, 집으로 데려가 주셨다
외진 구석에 피어있던 꽃, 어루만지며
목말까지 태워주신 사랑은
겨울에서 봄을 이어주는 다리였다
창밖에는 그날처럼 눈이 내리고
꼬리를 문 차들이 어둠을 밝히며 영종대교를 지나고 있다
바닥물 위에 길이 환하다
-이희국 「다리」전문
위의 시에서처럼 공간이나 장소가 반드시 현장성을 지니지 않는다. 비록 현장성을 담았다고 하더라도 쉽게 드러나지는 않는다. 화자는 ‘교무실’에서 놀고 선생님의 목말을 타고 지냈던 어린 시절을 영종대교 위를 지나면서 회상하는 내용이다. 이 시를 형상화하는 과정에서 보면 영종대교 위에 있다는 점에서 실제의 현장과 복합적 심상으로 표현된다
‘교무실’에서 있었던 일들이 ‘영종대교’를 지나는 길에 불현 듯 떠오른다. 올라 상황과 조건이 다리 위라는 유사성을 제하고 나면 전혀 이질적이지만 화자의 머리속에서 맞물려 있으므로 두 상황을 연관지어 시화한다. 장소에 대한 주체적인 사유와 구현 방식은 대상에 대한 지각과 구현의 방식에 따라 달리 드러나므로 사유의 관점을 쉽게 파악할 수 있다
시에서 화자의 주체적 경험들이 내재되어 있던 ‘다리 위’라는 경험의 장소가 나타난다. 현재의 장소인 ‘영종대교 위’에 과거의 선생님의 목마를 타던 ‘다리’위를 불러 들여 재경험하는 과정을 통해 과거의 기억과 경험을 재구성하면서 가치관에 대해 자신만의 방식으로 느끼고 표현하고 만들어가는 ‘아토포스’의 인식 체계를 구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