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연
한 줄을 잡으면
바람을 풀고 허공을 감은
다른 한 끝이 따라온다
걸어가는 길목에서
만나고 헤어지는 강물처럼
세월에 녹고 기억에 감춘
이름 잊은 꽃들처럼
나무와 나무 사이에서
불쑥 나타난 새들처럼
아침 한나절 추억처럼
하늘에 퍼지는 물결소리처럼
가슴에서 꽃으로 피어
파도로 부서지거나
잠못 이루는 밤
뿌리처럼 땅속을 뒤척이거나
깊은 햇살이 닿아 초록숲 되거나
그럴싸하게 눈이 부시거나
뒤따라오는 바람이 되거나
하는 우연히 맺어지는 사이
거자필반去者必返 회자정리會者定離 생자필멸生者必滅 생각해 보면 참 많은 사람들과 만나고 헤어졌다 헤어지고 소식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의 이름을 기억하는 사람은 그중에서도 몇 안된다 휴대폰에 저장된 이름의 목록을 보면서도 누가 누구인지 다 기억하지 못한다
의도적으로 잊고싶은 사람도 있고 잊으려고 노력해도 잊을 수 없는 사람도 있다 문득 예기치 않게 사라졌다가 다시 만나는 경우도 있다 이런 경우는 만나고 헤어지는 필요 충분한 시간이 다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의미로 받아들인다
왠지 인생에는 계산되지 않는 법칙이 있는 것은 아닐까 단지 만나고 헤어지는 원리에서 뭔가 일정한 횟수나 시간이 채워져야 가능하다는 생각까지 더해진다 예를 들면 줄 수 있는 만큼 주면 더 이상 그 인연이 사라져 헤어지게 되는 것 누군가를 위해 기도를 할만큼 하고 나면 더 이상 기도가 되지 않는 마음 제대로 만나지도 않았는데, 더 이상 만날 기회도 의미도 사라지는 관계 오래 만나도 변함없이 만나게 되는 사이 단 한번 만났을 뿐인데 진저리를 치는 관계라든가 헤어졌지만 여전히 세상 어디엔가 한번은 만나겠지 라는 미련을 갖는 관계 등등
언젠가부터 사람들에 대한 기대를 버렸다 바람이 불지 않는데, 일어서는 낙엽은 없다 슬프지 않은데 우는 사람도 없고 이별없이 헤어지는 관계도 없다 시작과 끝이 정해져 있고 흐르는 것과 머무는 것은 흐르게 두거나 갈무리를 해야 한다 이처럼 어떤 말과 행동의 밑바탕에는 뭔가 알 수 없는 법칙이 있다 특히 요즘은 무엇이든 인연이 닿아야 가능하다고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