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꽃
밤이 훤해서
달빛 때문인 줄 알았는데
길 건너 배나무밭에서
배꽃이 화들짝 피어서인 줄은
간간히 스쳐드는
향기 덕분에 알았다
배꽃을 처음 본 날, 참 향기롭고 깔끔 하다고 생각했다 시원한 배맛처럼 배꽃은 잎도 꽃도 입속도 시원시원하다 추억 속 배꽃이 가슴에서 다시 피는 날이 있었다 처음 본 맑고 깨끗한 꽃 한 송이 세상의 고결함을 다 지닌 꽃잎 위에서 구름도 하늘도 머물러 있다
가끔씩 구름은 비를 내리기도 하지만 바람도 불고 이슬도 내리지만 배꽃은 여전히 먼 곳까지 간절한 향기를 데리고 떠나간다 누가 어디에서 어떻게 살아가는지 모르지만 가끔씩 들려오는 소식에 그러려니 하면서 소식을 듣곤 한다 봄바람에 섞여 내 곁에 오는 배꽃향기가 가끔은 그런 친구들의 소식 같다
지난겨울 유난히 맛이 좋은 시원시원한 배를 먹고 씨앗 서너개를 화분밑에 심어두었다 그런데 올봄 베란다 화분 아래서 싹을 내더니 이제는 제법 키가 자라 작은 화분을 차지하고 있다 쳐다보는 사람들은 언제 키워서 꽃이 피고 열매를 맺고 따 먹겠냐고 말한다
나는 그런 게 중요한 건 아니다 씨가 발아를 하고 새순을 내고 키가 자라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이 얼마나 기쁜지가 더 중요하다 분명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다고 해도 내가 먹던 배처럼 달거나 서글서글한 섬유질을 지닐 거라고는 그다지 기대하기 않는다 하지만 나는 마음껏 자라 커다란 나무로 자라는 모습을 보고 싶어서 자꾸만 씨앗을 보면 심는다
내가 아니라도 그 누군가가 배를 딸 수 있을 거라는 그 마음으로 그냥 씨앗들을 몽땅 쓸어 버리기보다는 나와 인연이 닿았으니까 그냥 쓰레기 통속으로 모두 사라지는 것을 보고 싶지 않은 그 마음이 더 크기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