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禪, 보이지 않는 경계
장동범
‘경계에 빠지면 답이 없다’ 이 말의 참뜻은 둘러쳐진 그것이 실체라고 생각하고, 둘러쳐진 것이 없을 때에 실체가 없다고 생각하는데, 이는 경계에 붙들린 생각으로 본다. 반면 흔히 우리가 한없이 먼 것으로 알고 있지만 실은 보이지 않아도 가장 가까이 있다는 생각은 경계를 벗어나고 넘어선 사고이다. 이는 禪적 경계의 의미로 소수의 사람들은 이 틀을 훌쩍 뛰어넘기도 한다.
대상을 의미하는 경계는 자신이 존재하고 지각되는 대상이 존재하는 세계에서만이 가능하다. 자신의 외부에 존재하는 대상은 눈 귀 코 혀 신체를 통해 외부 사물을 지각한다.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이라는 감각 이외 대상에 대해 사유하고 판단하고 분별하는 기능이 있는데, 이를 불교에서는 경계라고 하고, 그 대상을 법(法)이라 한다.
물
무(無) ~ ㄹ
모양 없이 흘러
산에서는 산을 비추고
저자에서는 사람을 비추며
바다에 이르러 하늘을 비춘다
-장동범 「물」
상즉상입(相卽相入)『화엄경』(십회향품) 이란 삼라만상이 서로 대립하지 않고 융합 작용을 통해 밀접한 관계를 무한히 유지한다는 의미이다. 상즉(相卽)은 두 개의 사상(事象)이 서로를 버리고 무차별한 하나가 되는 것으로, 하나가 없으면 다(多)는 성립되지 않는다.
자신을 버리고 상대와 같아져서 바탕 전체가 일체의 모든 법이면서 항상 상대를 거두어 자기와 같아지는 것이니 일체 모든 법이 곧 자기의 바탕이 되도록 하는 것이다. 상입(相入)은 서로 걸림이 없이 융합하며 모든 현상은 인연에 따라 일어나고 사라지는데 한쪽이 본체(體⇒能)이면 다른 쪽은 작용(用⇒所)이 있게 된다. 따라서 서로 간에는 경계가 나타나고 이로써 존재의 성립이 가능하다고 한다.
시에서 화자는 시각의 대상(對象)인 ‘물’의 존재를 통한 사유가 나타나는데, 이는 사물과의 경계를 드러내는 매개가 된다. 오관에 의해 지각되는 대상인 ‘물’은 마음 분별의 대상인 ‘산’ ‘사람’ ‘하늘’을 비춘다’는 상념(想念)으로 나타난다. 물이 ‘비춘다’는 행위는 상대와 자기가 존재하고 사라짐이 동시에 나타나는 것으로 상즉에 해당된다.
모든 현상의 본체에 대해 한쪽이 공(空)이면 다른 쪽은 반드시 유(有)라 하나 동시에 ‘공’은 ‘유’가 될 수 없기에 ‘물’은 ‘산’ ‘사람’ ‘하늘’ 등과 같은 사물이 될 수는 없지만 서로 융합하고 장애가 없는 사물과 일체화 상태가 된다는 의미이다. 무상하는 진리를 일깨우기 위한 선지식(善知識)으로 깨우친 자의 입장에서 보면 모든 해답은 자연 속에 있듯이 시의 화자는 자연과 자연을 구별하지 않고 동격시하는 한편, ‘물’의 존재를 통해 깨달음을 얻고 이러한 가치관의 원리를 스승으로 받아들인다. 또한 자신을 버리고 상대를 비추는 것은 상대와 하나가 되는 체용일여(體用一如)의 이치를 나타내기도 한다.
이처럼 시에서 ‘물’은 자신을 버리고 상대를 비추고 상대와 하나가 되는 ‘산’ 이면서 ‘사람’이면서 ‘하늘’이 되는 관계를 이루는데 최종적으로는 5식의 행위에서 6식이나 그 이상의 정신작용으로 나아가는 매개로 작용되고 이는 어떤 충돌이나 걸림이 없는 융합의 원리를 지닌 '相卽相入'을 의미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