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현실적 삶의 경계, 틈
인간은 누구나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들면서 살아간다. 불가에서는 生死不二라는 생사관으로 죽음을 삶의 연장이자 결과물로 받아들인다 따라서 수행과 선업으로 아뢰야식을 맑게 하면 다음 생에서도 행복하게 되므로 죽음의 본질과 삶의 실상을 통찰하여 죽음을 두려워 말라고 한다
하지만 인간의 인식 영역에서 삶과 죽음을 안과 밖이라고 선을 긋기에도 애매모호하다. 왜냐하면 인간에게 죽음은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다가오지만 언제 어떻게 어떤 방식으로 다가올지 누구도 알지 못하므로 두려운 영역으로 인지되는 것은 틀림없기 때문이다
넘어서는 안 되는 경계를 넘고 있다
넘어야 할 경계를 넘지 않고 있다
저 도저한 벽을 두드리며
천길 낭떠러지에서 춤춘다
북소리, 비밀을 흔드는 북소리에
만상이 꽃으로 죽는다
천지가 별로 되살아난다
산다는 것은 벽이다, 낭떠러지다
아니다, 꽃이다, 한판 굿이다
목욕재계 부정을 씻고 강을 건너
뛰고 구르고 높이 솟다가
치마 안에 몰래 감춘 생명
성처녀 배앓이 속의 신성탄생이다
-강남주 「벽 또는 낭떠러지」
춤은 그 사람의 총체적 삶의 모습을 주체적으로 표출한 것이다. 따라서 정신 육체 사상적 내면을 자신의 목적에 맞도록 함축적으로 이용한 몸의 실천이라 할 수 있다. 온몸을 움직여 자신을 표현하고 자신을 내보이는 행동양식인 춤은 곧 몸으로 실천하는 예술이다.
‘정신혜의 춤’은 전통 레퍼토리에 자신만의 독특한 방식의 춤사위이라는 표현을 보태는 내보내는 몸짓언어로 알려져 있다 전통춤은 마당이나 방과 같은 작은 무대에 어울렸다면 그의 춤은 대형 무대에 걸맞는 연출로 기존의 우리 춤이 지닌 전통성을 살려내면서도 이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확장된 공간도 잘 소화해 내는 춤으로 평가된다.
시에서 화자에 따르면 ‘비밀을 흔드는 북소리’가 삶과 죽음의 경계가 되고 또 ‘만상이 꽃’으로 죽고 그 후에 다시 ‘천지가 별로 되’살아난다고 한다. 이는 고정성이나 실체가 없는 물질(오온)들의 가화합물로 인연에 따라서 일시적으로 결합되고 흩어지는 생멸의 상태 가운데서 한 존재가 죽고 새로운 몸을 받아 다른 존재로 다시 태어나는 윤회사상(輪廻 , samsara)을 드러낸다.
산다는 것은 ‘벽’이었다가 ‘낭떠러지’가 되고 다시 ‘꽃’이 되고 ‘굿’이 되는 가정 뒤에는 변화무상한 ‘허공’이라는 ‘특별한 공간’ 즉 틈이 있다. 마치 존재하는 모든 것은 항구불변이 없듯 한 공간에 놓인 수많은 이미지들이 들어왔다가 사라진다 그리고는 다시 마술처럼 새로운 형체로 변화되어 존재한다 또한 응시할수록 다른 그림들이 드러냄과 사라짐을 반복한다. 일탈의 시간 사이에 놓인 틈처럼 화자가 놓여있는 현재의 삶은 사라진다. 선망이 분명하게 드러나는 무한의 존재인 듯 드러날 듯 모호한 경계 속에서 서서히 드러난 낯설지만 잔잔한 긴장감을 느끼게 한다.
특히 춤에서 몸은 현실적인 틈을 파고 든다. 시에서 화자는 ‘벽’ 혹은 ‘낭떠러지’와 같은 현실적 상황을 대상으로 직접적 접촉을 시도하거니와 ‘목욕재계 부정을 씻고’와 같이 부정적 현실과 유리되고자 청결을 갈무리하는 내면을 묘사하기도 한다. 하지만 화자는 여전히 ‘뛰고 구르고 높이 솟다가’에서 춤을 추는 과정에서 ‘허공’을 매만지는 틈을 놓치지 않고 자신의 시야로 끌어들이는 5온의 상태에 놓인다
‘치마 안에 몰래 감춘 생명’에서는 최초의 몸짓과 최후의 몸짓으로 새로운 경계와 경계 사이를 뚫고 두터운 틈을 새롭게 만들어 낸다. 그리고 그 틈 사이는 새 생명을 잉태하는 생명의 공간으로 두는 의미를 부여하는 6식의 상황이 나타난다. 춤추는 공간은 낯설지 않지만 그 속에서 펼쳐지는 새로운 차원의 공간을 만들어내는 무희가 만들어내는 틈을 놓치지 않고 ‘생명’이라는 긍정성 속에 ‘신성탄생’ 비가시적인 세계를 펼쳐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