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시철

by 김지숙 작가의 집

우리는 언제나 일체의 성취 조화 원만 등이 구족具足된 상태로 살아가길 원한다 하지만 생각하지 못했던 고통과 번뇌 이별과 죽음 등과 같은 불행한 상황에 처하면서 살아간다. 이를 헤아려 볼 때, 그 상황들이 자신의 뜻에 부합되거나 순응하는 경우와 그렇지 않은 상황을 맞기도 한다. 주어진 상황과 자신의 뜻이 맞는 순경계의 상황이 연속된다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는 역경계의 경우이라도 참아야 할 때가 있다.




간밤엔

20여년 전에 죽은 아내와

60여년 전 처음 만난 그날 그때처럼

달콤한 밤을 보내다가

잠을 깼다

꿈이란

생(生)과 사(死) 사이를 오가는

교두보인가.

-김시철 「교두보」





사랑하는 사람에게 닥친 죽음의 경우 특히, 죽음은 인간이 마주한 근원적인 고민이자 인간이 존엄할 수 있는 바탕이 되기도 한다. 불교에서 죽음은 삶의 연장이자 결과물이다 따라서 수행과 선업을 통해 죽음의 문제를 편안하고 행복하게 맞을 수 있다고도 하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여전히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은 슬픔의 극복이라는 문제를 남긴다.

시에서 화자는 ‘20여년 전에 죽은 아내’와 꿈에서 만나 ‘달콤한 밤’을 보냈다가 꿈에서 깨어났다. 꿈에도 여러 종류가 있다 계속 꿈꾸게 되는 꿈이 있는가 하면 더 이상 꿈꾸지 않게 되는 꿈도 있다 꿈을 깨우는 꿈이 있는가하면 꿈속이 만족스러울 때가 있고 위기에 처한 꿈도 있다 화자는 죽은 아내를 만나는 장소로서 삶과 죽음 사이를 넘나들며 가슴 떨리는 꿈을 꾸고 있다.

이는 선경계의 의미를 지닌 꿈이 분명하며 이는 산자와 죽은 자, 과거와 현재, 꿈과 현실이라는 두터운 경계를 뚫고 만나는 공간이며 각각의 대상 속에서 이미 매듭 지워진 상태에서 넘나들게 된다 하지만 화자의 뜻과 부합된 선경계 속을 누린 꿈속에서의 화자는 기쁜 마음의 상태로 즐거움(樂受)과 좋아하는 마음(愛)이 함께 한다. 그렇지만 꿈에서 깨어난 현실에서는 더 이상 아내와 만날 수 없어서 안타까워한다 화자는 산자와 죽은 자가 만나는 틈의 공간이 되는 꿈을 ‘교두보’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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