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자연의 섭리와 틈
어린 구도자 선재(善財))동자가 부처님과 같은 깨달음을 얻으려는 보리심(菩提心)이 일어나 선지식을 찾아다니며 법문을 듣고 깨닫는 과정을 담은 『화엄경』 (入法界品)에서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는 상호의존적 관계를 깨달아 인간과 자연이 상호의존적으로 하나의 전체를 이루고 있다고 한다.
자연과 인간, 둘을 분별하지 않고 한 몸으로 보는 동체자비 (同體慈悲)의 실천으로 윤리적 삶의 토대가 된 불이법과 연기법(因緣生起) 이를 줄여 ‘연기’(緣起)에 의하면, 개개의 존재는 자신과 관계를 맺고 있는 전체에 의해 형성되는 것이지만, 동시에 개별적인 존재가 모여서 전체를 형성하며 모든 존재는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 받는 관계에 놓여 있다.
기억을 저장하는 나무에는
망각의 수액도 함께 흘러
전생을 돌아 나온 영혼이라 해도
다 알지 못한다
구슬 같은 달빛 한 점 이고 선
청춘의 길섶에 핀 들꽃 같은 이여
그리움의 솜털이 보송보송 돋아나는
나무 한 그루 내 안에 산다
-임경희 「나무 안에 사는 나무」
이는 우주일체를 한 몸으로 동시에 사유하는 존재론적 사유방식으로 생사를 일여로 본다 자연에도 죽음이 있으니 이와 더불어 삶이 존재하는 생사일여의 상생법과 서로 통하다. 대승불교에 따르면 모든 존재들이 관련이 있거나 상호의존적이라면 어떤 양식으로든 모든 존재에 대해 책임이 있으며 어떤 존재는 반드시 다른 존재에 대해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이러한 사유의 방식은 ‘지구 생태계는 전체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하나의 유기적 통일체이며 아무것도 증감하지 않고 전체로서는 변화가 없다’라고 언급한 생태학자 베리 코모너에게서 읽을 수 있다 이러한 인간과 자연의 조화와 합일을 이상적인 경지로 보고 있다
시의 화자는 ‘기억을 저장하는 나무’에서는 현재의 상황에서 과거의 기억을 소환하는 과정이 드러난다. 기억의 소환은 과거 그대로의 기억을 불러오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기억을 창출하는 바와 다르지 않다고 한다 낡은 기억으로 새로운 형태의 기억을 재기록하는 것이 기억의 소환이다 이유는 기억소환의 주체인 화자는 시공간 속에서 끊임없이 상호작용하고 그 결과를 기억으로 치환한다
그 기억은 어떤 계기로 다시 인식의 지평위로 올라오게 되므로 기억의 소환은 과거와의 접속이나 과거는 아니다 ‘전생을 돌아 나온 영혼’은 연기 사상에 비롯된 것으로 현세이전의 삶을 미리 풀어 그것을 깨닫는 다는 의미에서 보면 설사 그 나무가 이러한 전생을 돌아왔다 하더라도 다 기억하지 못한다고 하여 기억의 틈을 보여준다. 또 화자는 그러한 ‘나무 한 그루 내 안에 산다’하여풀지 못한 윤회가 계속하기보다는 현실적인 삶을 끊임없이 고찰하는 과정에서 이전의 삶을 깨닫는 과정으로 읽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