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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석「국수」

by 김지숙 작가의 집

인간의 기억은 해마(hippocampus)에서 만들어진다. 해마가 없는 경우 음식은 기억하지만 그 음식의 의미를 기억하지는 못한다. 우리는 맛만으로도 충분히 음식에 대한 기억을 되새긴다. 맛의 기억은 변형되고 사라지지만 때로는 삶의 가치관을 형성하는 핵심이 되기도 한다.



아, 이 반가운 것은 무엇인가

히수무레하고 부드럽고 수수하고 슴슴한 것은 무엇인가

겨울밤 쩡하니 닉은

동티미국을 좋아하고

얼얼한 댕추가루를 좋아하고

싱싱한 산꿩의 고기를 좋아하고

그리고 담배 내음새 탄수 내음새도 수육을 삶는 육수국 내음새 자욱한 더북한 삿방 쩔절 끓는 아루국을 좋아하는 이것은 무엇인가

이 조용한 마을과 이 마을의 으젓한 사람들과 살틀하니 친한 것은 무엇인가

이 그지없이 고담하고 소박한 것은 무엇인가

-백석 「국수」일부





백석의 시에는 110가지 정도의 음식이 등장한다.(김명인 1983) 그의 시에 등장하는 국수는 이북식 냉면을 말한다. 가난했던 마을 사람들과 함께 나누던 소박한 음식을 통해 공동체적 삶의 회복과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마을 사람들의 마음 등 사건에 대해 언급하는 일화적 기억이 나타난다.


기억은 빠른 속도로 망각되며 그 과정에서 삶을 반추한다. ‘히수무레 슴슴한 닉은 댕추가루 삿방 아루국’ 등과 같은 토속적 음식에 대한 표현은 향토 음식에 대한 친근감을 유발한다.

공동체 생활에서 오는 다양한 음식들을 ‘좋아하고’로 일관된 점은 전체 문맥의 흐름에 따른 화자 자신의 경험과 선호도에 대한 의존성이 높은 표현 방식으로 읽힌다. 이 일화적 기억을 떠올리면서 집단적 일체감에서 오는 편안함과 고향의 정겨움을 구사한다. 이 기억은 명확한 공간 시간적 맥락 속에 위치한 사건에 관한 기억이 주를 이룬다.

시에서 국수는 냉면으로 찬 음식이지만 마을 사람들과 살뜰히 친하게 만드는 따스한 정을 상징하며 향수를 반향한 대표적 음식이 된다. 장기 기억이란 한번 만들어지면 잊히지 않는다. 쉽게 다시 떠올려내지는 못하지만 최초의 이미지를 되새기거나 장소 분위기 등이 비슷한 상황으로 반복되면 다시 생각나기도 한다 이 기억은 장기 기억 중 의식적 상황이 필요한 외현적 기억에 해당되며 장기적으로 변화된 기억이다.

‘쩡하니 닉은 / 동티미국 / 얼얼한 / 댕추가루’ 등 재료와 양념 상태에 대한 섬세함은 음식에 대한 감각적 맛을 선사한다. 국수 맛은 ‘히수무레하고 부드럽고 수수하고 슴슴한 맛 고담하고 소박한 것’으로 동치미 국물에 댕추가루를 넣은 칼칼한 맛으로 산꿩으로 육수 국물을 낸 고봉처럼 소복하게 꿩고기 동치미 댕추가루 등이 고명으로 올린 평안도 고기 국수를 오랜 기간 뇌리에 저장한 일화적 기억을 복원하는 현상으로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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