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루스트에 의하면 인간의 기억은 지적 실제적 행동적 공리적 성격을 띠는 피상적 기억에 해당되는 유의적 기억과 자생적 감정적 기억으로 이루어진 무의적 기억으로 나뉜다. 유의적 기억은 일상적 사회적 사건에 관한 기억으로 참다운 내적 현실을 되살리지는 못한다. 무의적 기억은 잃어버린 시간을 재발견하는 잠재의식 깊숙이 들어있는 기억을 소생시키는 탈각한 순수의 기억이다(조향 1994)
까치 혓바닥 몸
종잇장 가벼운
누가 제 몸 우려내면 향내 나랴
자식 몸 던져 에밀레종 만들 듯이
말리고 볶여서 뜨거운 물에 던져지면
평생 몸 닦은 그대 향내 나리니
누가 제 몸 우려내어 남의 기쁨 되랴
그 향물에 있는 듯 없는 듯 조신한
그대 미소 번지리니
그 향 갖고 싶어 사람아.
무릎 꿇고 절로 마시니
-김규화 「향」 전문
이 시에는 어떤 정보가 어떤 순서로 어떻게 처리했는지에 대한 기억이 나타난다. 이러한 기억이 되살아나는 부분은 ‘뜨거운 물에 던져지면’에서 한잔의 차가 만들어지기까지의 공정이 나타나는 부분이 이에 해당되며 이는 절차적 기억에 해당된다. 된다. ‘향물에 있는 듯 없는 듯’ 에 해당되는 이 기억은 암묵적으로 이미 학습된 기억이다.
시에서 ‘까치 혓바닥 몸 / 종잇장 가벼운’에서는 무의적 기억에 해당되는 잠재된 깊숙한 곳에 있는 차에 대한 의식이 나타난다. 찻잎 돌돌 말린 모양을 새의 혀 모양과 유사하다는 점은 지적 실제적 성격을 띠는 지적 기억에 해당되는 유의적 기억도 나타난다. ‘자식 몸 던져 에밀레종 만들듯이’ ‘누가 제 몸 우려내어 남의 기쁨 되랴’ 에서는 눈앞에 보이는 찻잔 속의 찻물에서 느끼는 지적 성격의 유의적 기억을 나타낸다
또한 이를 넘어 ‘그 향물에 있는 듯 없는 듯 조신한’ 찻잔을 바라보며 무의식적 세계 속으로 들어가는 ‘조신한’과 같은 내면에서 이미 마음으로 결정된 어떤 사항을 내포하는 의미적 기억은 과거의 특별한 사건 자체에 대한 기억이 없이도 알고 있는 기억까지 더해진다. 이처럼 화자의 기억은 단순히 저장되었다가 인출되는 기능과는 다르며 스스로 재구성하고 당시의 상황에 알맞은 정도의 사고에 의존하고 이해되는 정도로 이루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