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정화 「쌀의 묘비명」

by 김지숙 작가의 집

절차적 기억이란 두뇌에 어떤 정보가 입력되었을 때 어떤 순서로 처리했는지에 대한 기억이다(Tulving 1983) 이 기억은 암묵적 기억으로 의식에서 벗어나기도 하며 반복(repetition)에 의해서만 주어진 작업을 수행하지만 이전의 경험의 따라 무의식적으로 접근할 때 더 잘 수행하는 기억이다




백의민족의 식탁 오르기까지

생명 지킴이로 앞장서서

한순간도 모반 꿈꿈지 않고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들녘 지키며 곳간 채우며

따가운 햇살에 이마 데이고도

타는 목마름으로 가을 햇살까지 마시며

선채로 지칠 줄 모르는 인내갖고

꿈 발아시켜 이어 온 생명의 혼불이여


달궈진 무쇠솥 펄펄 끓는 오장육부

한그릇 밥이 될 때까지 참아 온

번뇌인들 한 두 가지였을까 마는

똑같은 무쇠솥 안에서도

밥과 누룽지로 갈라지는 운명

때론 밥이든 죽이든

혹은 죽도 밥도 아닌 신세로

수채 구멍으로 뒹굴어간다 해도

오로지 이 땅의 생명 지킴이로

수수만년 땅 심 지켜온

위대한 조선의 쌀이여

-강정화 「쌀의 묘비명」 전문





이 시에서는 쌀이 ‘생명 지킴이’로 ‘한 그릇 밥이 될 때까지 번뇌에 대하여’ 언급하는 과정에서 쌀에 대한 사랑이 순차적으로 변해가는 부분을 드러내면서 쌀한톨이 밥한 그릇이 되어 식탁에 오르는 과정을 절차적 기억에 편승하여 잘 설명한다. 나아가 쌀이 ‘밥이든 죽이든 죽도 밥도 아닌 수채 구멍으로 뒹굴든’ 에서처럼 쌀알이 다양한 방식으로 세상에 나왔다가 다양한 장소에서 서로 다른 역할을 하며 다시 세상과 이별하는 방식에 대하여 언급하는 과정에서 겨레와 조선을 지켜준 쌀의 고마움과 존귀성을 알아주기를 바라는 마음을 밝힌다. 다양한 영역의 뇌신경세포에 영향을 받으며 경험을 통해 학습되며 반복적 신호가 신경세포와 연결되면서 시냅스를 강화하여 만들어진 기억을 절차적 기억이라 한다.

‘한 그릇 밥이 될 때까지 참아 온/번뇌’ ‘생명 지킴이’ 등과 같이 화자 자신도 모르는 욕망과 신념을 드러내기도 한다. 이 절차적 기억은 음식 스크립트가 시화되는 과정에서 순서의 의미가 매우 중요하게 작용되며 언어를 취사선택하고 구사하는 과정에서 꼭 필요한 기억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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