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택 「흰밥」

by 김지숙 작가의 집


해는 높고

하늘이 푸르른 날

소와 쟁기와 사람이 논을 고르고

사람들이 맨발로 논에 들어가

하루 종일 모를 낸다.

왼손에 쥐어진

파란 못잎을 보았느냐

캄캄한 흙 속에 들어갔다 나온

아름다운 오른손을 보았느냐

그 모들이

바람을 타고 쓰러질 듯 쓰러질 듯 파랗게

몸을 굽히며 오래오래 자라더니

흰 쌀이 되어 우리 발 아래 쏟아져

길을 비추고

흰 밥이 되어

우리 어둔 눈이 열린다

흰 밥이 어둔 입으로 들어갈 때 생각하라

사람이 이 땅에 할 짓이 무엇이더냐

-김용택 「흰밥」 전문




시에서 화자는 ‘논을 고르고 모를 낸다 몸을 굽히며 자라더니’ ‘흰 쌀이 되어 흰 밥이 되어’ 가는 과정을 살핀다 벼를 심고 이삭이 여물고 벼를 타작해서 한 그릇의 밥이 되어 밥상 위에 놓이기까지 흰밥 한 그릇은 얼마나 많은 노력으로 일낸 결과물인지 소중하게 여기고 살라는 흰밥이 주는 쌀의 존엄성을 담았다

즉, 쌀 한 톨이 한 그릇의 밥이 되기까지의 절차적 기억이 나타난다. 어떤 정보의 의식적 회상보다 암묵적 학습에 기반을 둔 절차적 기억은 행위나 조작을 하는 방법을 담아두는 두뇌 내부에 저장되는 기억이다

이 기억을 저장하기 위해서는 연습이 필요하며 일단 학습되어 자동화되면 주의력이 필요치 않다 그리고 이 기억이 완성되면 연습과정에서 의식적으로 기억된 부분은 사라진다. 한 그릇의 흰밥이 되기까지 보이지 않는 노력과 농부의 고마움을 새기며 흰밥을 먹어야 한다는 보다 확장된 시각을 그려낸 차이점이 있다

그밖에도 흰밥에 대해 ‘길을 비추고 / 눈이 열린다’와 같은 시각적 정서를 표현한 감각적 기억이, 그것을 먹고 ‘눈이 열린다 생각하라’ 와 같은 부분에서는 내면적 상황을 들여오는 일화적 기억을 표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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