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리에 맞고 눈 맞아가며 견디고 있는 마지막 저 헌신
저것은 맨 처음 어둔 땅을 뚫고 나온 잎들이다
아직 씨앗인 몸을 푸른 싹으로 바꾼 것도 저들이고
가장 바깥에 서서 흙먼지 폭우를 견디며
몸을 열 배 스무 배로 키운 것도 저들이다
더 깨끗하고 고운 잎을 만들고 지키기 위해
가장 오래 세찬 바람맞으며 하루하루 낡아간 것도
저들이고 마침내 사람들이 고갱이만을 택하고 난 뒤
제일 먼저 버림받은 것도 저들이다
그나마 오래오래 푸르른 날들을 지켜온 저들을
기억하는 손에 의해 거두어져 겨울을 나다가
사람들의 입맛도 바닥나고 취향도 곤궁해졌을 때
잠시 옛날을 기억하게 할 짧은 허기를 메우기 위해
서리에 맞고 눈 맞아가며 견디고 있는 마지막 저 헌신
우리 주위에 시래기가 되어
생의 겨울을 나고 있는 것들은 얼마나 많은가 -도종환 「시래기」 전문
이 시에서는 한 식물체에서 가장 처음 태어나지만 제일 먼저 버림받는 시래기의 존재에 대한 성찰이 절차적 기억이라는 통로로 재현된다. 마지막까지 인간의 곁에 남아 이들에게 기꺼이 헌신하는 과묵한 시래기라는 존재가 변화하는 과정에 관해 언급하는 과정에서 절차적 기억이 나타난다. 이 기억은 몇 년간 수행하지 않더라도 구체적 노력을 시도하지 않아도 실행 가능한 기억으로 이는 인지적 행동적 행위체계로 자동적으로 작동되며 ‘어떻게’와 ‘무엇’에 대한 지식을 기억한다. 또한 장기적이며 암묵적으로 인출되는 비서술적 기억이라는 특징을 지닌다.(Tulving&Squire)
‘가장 오래 세찬 바람맞으며 하루하루 낡아간 것’이 맛 고운 시래기가 되기까지는 인내의 시간들을 보내고서야 가능하다 그렇지만 사람들은 모든 맛있는 것을 다 먹고 난 뒤에 ‘사람들의 입맛도 바닥나고 취향도 곤궁해졌을 때’처럼 맛있는 먹을거리가 사라진 한겨울 즈음에 비로소 시래기를 먹는다. 이 시는 뒤늦게 선택된 시래기와 같은 운명에 놓인 존재에 대해서도 ‘우리 주위에 시래기가 되어 / 생의 겨울을 나고 있는 것’처럼 동시에 깊이 성찰하는 계기를 갖는다는 의미를 기술하며 이 기억은 수행 가능한 지식을 기억하는 절차적 기억이 나타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