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훈실 「입과 숟가락 사이」

by 김지숙 작가의 집

감각적 기억이란 감각기관을 통해 들어온 자극에 대하여 아주 짧은 시간동안 지속되는 특징을 지니며, 이 기억은 단기기억에 해당된다. 원 자극이 사라진 후에도 비교적 인지 처리되지 않은 원형대로 자극에 대한 정보가 유지되는 특징이 있다. 시각 청각 후각 촉각 등 감각기관에 따라서 각각의 감각적 기억을 갖는다.



허기가 흩뿌려진다 만져지지 않는 입이 바닥에 뒹굴고 행간을 놓친 숟가락을 긍정한다 도망갈 수 없는 허기가 얇고 길게 늘이는 다층의 혀 아침과 저녁을 지나 다음날 이른 아침에도 여전히 비어 있을 그녀의 미뢰 난 삐걱이는 계단을 올라 알감자 하나를 낡은 식탁에 놓는다 비밀의 아지트에서 허공은 쏟아져 내리는 빵과 우유와 여자의 작은 입과 혀들의 충돌이다 숟가락 사이에서 길을 잃은 층층의 혀

-고훈실 「입과 숟가락 사이」 일부



시에서는 ‘층층의 혀’에서 볼 수 있듯이 공간적 기억이 먼저 나타난다. 이는 방향 위치 거리에 관한 정보를 기억하는 것으로 이 기억의 목적은 장소를 찾아가는 것과 물건을 찾아내는데 있다. ‘허기 / 길게 늘이는 / 작은 입과 혀들의 충돌’ 등에서는 혀가 느끼는 미각에 해당되는 돌기가 느끼는 감각적 기억이 나타난다. 이 감각적 기억은 신경연결의 일시적 변화에 의해 수행되며 수밀리초에서 수초까지만 기억을 유지하는 특징이 있으며 제한된 용량과 기간만 유지되는 특징이 있다 ‘만져지지 않는 / 비어 있을 / 쏟아져 내리는 / 낡은 식탁에 / 길을 잃은’ 등에서도 촉각적 청각적 시각적 기억으로 유발된 경험의 짧은 조각만을 보여준다. 또한 ‘여자의 작은 입과 혀들의 충돌’에서는 화자의 행동에 대한 관찰적 시각이 존재하는 일화적 기억도 나타난다

‘입이 바닥에 뒹굴고 / 다층의 혀 / 계단’ 등에서는 단계와 절차를 밟아 순차적으로 진행되는 식사의 순서가 절차적 기억으로 재생되는가 하면 이들은 장기적 기억으로 전환된다. 장기적 기억은 대체로 안정적이고 영구적 변화로 유지된다. ‘허기’ ‘길게 늘이는’ ‘삐걱이는’ 등과 함께 미각 시각 청각 등의 공감각적 기억이 혼융되어 나타난다.

특히 이 시에서는 ‘혀’는 그로테스크한 관능미를 기억한다. 어떤 대상이 지각된 최초의 순간에 거의 기억된다. 이러한 기억의 저장은 대개 아주 제한된 용량과 기간만 유지된다. 그리고 순간적으로 인식되지만 곧 잊어버린 많은 것들이 일상 속에서 일어난다. 우리가 감각으로 경험하는 수많은 자극들이 뇌에서 저장할 의사와 가치가 없는 것으로 판단하면 즉시 지워버린다.

음식 스크립트에 관한 흥미와 결합의 조건이 맞으면 기억이라는 저장조건에서 중요하고 흥미롭고 가치 있는 것들과 연결지어 저장한다. 시에서 입과 숟가락을 통과하는 ‘알감자 한 알’ ‘빵’ ‘우유’와 같은 음식스크립트에서도 유사한 기억을 인출하고 이들은 시각적 미각적 기억에 공존하는 공감각적 기억들로 혼재되어 나타나 다양한 기억의 유형이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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