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을 먹는 일이다
한여름에 한겨울을 불러 와 막무가내 날뛰는 더위를 주저앉히는 일
팔팔 끓인 고기국물에 얼음 띄워
입 안 얼얼한 겨자를 곁들이는 일
실은 겨울에 여름을 먹는 일이다
창 밖에 흰눈이 펄펄 날리는 날 절절 끓는 온돌방에 앉아
동치미 국물에 메밀국수 말아 먹으니 일이야말로
겨울이 여름을 먹는 일
겨울과 여름 바뀌고 또 바뀐
아득한 시간에서 묵은 맛은 탄생하느니
아버지의 아버지의 아버지, 그 깊은 샘에서 솟아난 담담하고 슴슴한 이 맛
핏물 걸러낸 곰국처럼 눈 맑은 메밀 맛
그래서일까 내 단골집 안면옥은
노른자위 도심에 동굴파고 해마다 겨울잠 드는데
풍속 바뀌어 겨울잠 자는 게 아니라
냉면은 메밀이 아니라 간장독 속 검고도 깊은 빛깔
그윽한 시간으로 빚는 거라는 뜻 아닐는지
-장옥관 「메밀냉면」
수많은 정보들을 상세히 기억하는 장기적 기억(Bahrick 1975)이 나타나는 이 시에서 ‘절절 끓는 온돌방 / 담담하고 슴슴한 이 맛 / 눈 맑은 메밀 맛 / 검고도 깊은 빛깔’ 부분에서 미각적 촉각적 시각적 기억에 해당되는 감각적 기억이 나타난다. 감각기관으로부터 뇌로 보내진 정보가 남아있는 흔적을 말하는 이 감각적 기억의 정보는 단기기억으로 전환하지 않으면 짧은 시간 내에 사라진다. 그래서 시간은 모든 기억을 정화시킬 뿐 아니라 고통스러운 기억조차도 아름다운 추억으로 여과시키기도 한다. ‘고기국물에 얼음 띄워 겨자를 곁들이는 일’에서는 고깃국물이 입속에 들어오기까지 과정은 감각적이지만 이를 풀어 놓은 기억은 장기적 기억으로 저장되는 절차적 기억으로 변화한다.
‘동치미 국물에 메밀국수 말아 먹으니 / 단골집 안면옥’ 등에서는 감각적으로 기억된 단기 기억이 누구에게나 동일하게 기억되는 의미적 기억으로 장기적 기억으로 저장된다. 메밀국수 냄새(후각적 기억)를 느끼고 털도 채 뽑지 않은 돼지고기를 삼키는 사람들을 만난다(시각적 기억) 메밀냉면 한 그릇이 펄펄 날뛰는 여름더위를 던지고 겨울을 택하는 방식이 메밀냉면을 먹고 역으로 한겨울 끓는 방안에서 동치미 국물에 말아먹는다(미각적 기억) 그래서 겨울에 여름을 먹는다고 하여 메밀국수를 시각(검은 빛깔)으로 표현하여 개인적 정서를 드러내는 감각적 기억의 집합체를 형성한다. 화자의 입맛을 자극하는 동치미 국물에 말아먹는 맛은 오랜 세월 속에서 탄생된 슴슴한 묵은 맛은 메밀국수를 직접 음미하는 과정으로 표현되어 국수와 화자의 거리가 매우 가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