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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의 육아-4

해마 아빠의 탄생

by 이파리

때가 되자 아이는 기어보려 시도했고, 일어서고 싶어서 버둥거렸으며 잇몸에서는 쌀알보다 작은 이가 나오기 시작했다. 그 곁에 언제나 아빠가 있었고, 아이의 첫 순간들을 경이로운 시선으로 기록했다. 작은 육아 수첩에 담긴 미숙하지만, 사랑이 넘치는 아빠의 마음을 보면 지금도 가슴이 따뜻해진다.


젖을 떼자 아이는 아빠와 더 밀착한 생활을 하게 되었다. 엄마 없이 꽤나 먼 거리를 이동할 수도 있게 되었고, 아빠만 곁에 있으면 울지도, 떼를 쓰지도 않는 착한 아가로 자랐다. 빈틈없이 기저귀 가방을 챙기는 솜씨도 솜씨려니와 친구 모임에도 기저귀 가방을 둘러메고 아이를 대동하곤 했다. 아이는 낯선 어른들 사이에서도 잠도 자고, 우유도 먹고, 이 손 저 손 사이를 오가며 잘 놀았다고 한다. 나로서는 엄두를 내기 어려운 과업을 척척 수행하는 남편을 우러르게(!) 된 계기이기도 했다.


평균의 아빠들보다 훨씬 더 많이 아이와 공감하고 애정이 넘치는 남편에게 사람들은 ‘해마 아빠’라는 별명을 붙여주었다. 수컷의 체내에 육아낭을 가지고 있어 암컷이 알을 낳으면 수컷이 출산을 한다는 해마. 우습기도 했지만, 남편에게 꼭 들어맞는 이름이기도 했고, 남편 자신도 흡족해했다. 아이 역시 조금 자랐을 때, ‘해마 아빠’라는 콘셉트를 퍽 좋아했음은 물론이고.

어떤 아가들은 애착 담요를 만지거나 엄마 품에서만 잠들기도 한다는데 우리 아기는 아빠의 팔꿈치를 만지며 잠에 빠져들곤 했다. 꽤 오랫동안 아빠 팔꿈치를 만지는 버릇이 계속되었는데 그럴 땐 자기 나름의 멜로디를 만들어 흐뭇한 표정으로 ‘압팔 압팔 팔라팔라팔~♪’이라는 알쏭달쏭한 노래를 부르곤 했다. 아빠의 팔꿈치 감촉이 마음에 든다는 뜻이었을까? 그 모습이 귀엽기도 하고, 재밌기도 해서 남편은 불평 없이 팔꿈치를 아이에게 내어 주었다.


남편은 소소한 담소와 대화를 즐기는 사람이어서 아이에게도 쉴 새 없이 이야기를 건넸다. 사물의 이름을 가르쳐주고, 비나 눈 같은 자연 현상을 설명해 주었다. 일상용품의 쓸모나 원리를 가르쳐 주기도 했는데 아이가 보는 세상이 어떤 곳인지 느끼게 해 주려는 노력이었고, 이 노력은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어른이 된 아들은 아버지의 세세한 설명이 때론 지겨울 테지만, 아가 때부터 들어온 아빠의 음성, 말투에 익숙해서인지 아무런 불평이 없다.


아이는 어디든 아빠와 다녔다. 가슴 띠를 매고 아이를 품에 안은 젊은 아빠는 동물원이며 아름다운 자연이며 가족 행사며 아이에게 새로운 것을 보고 느끼게 해 주려고 자신의 시간을 기꺼이 쏟아부었다. 자차가 없던 엄마 대신 아빠는 먼저 퇴근해서 아이와 놀아주었고, 직장 행사로 오후 시간이 비는 때나 휴일에는 아이와 단 둘이 나들이도 자주 했다.


조금씩 말로 소통하는 능력이 생기면서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는 것도 일상의 중요한 일이 되었다. 외동으로 커서 그런지 아이는 유난히 등장인물에 관심이 많았고, 의성어나 의태어의 재미에도 흠뻑 빠져들었다. 다소 밋밋한 엄마의 책 읽기와는 달리 감정을 섬세하게 살리는 아빠의 동화 구연을 아이는 좋아했다. 저녁부터 읽기 시작한 동화책은 아이가 잠들 때까지 몇 번이고 반복하여 읽어주었고, 남편은 지루했을 그 과정을 번번이 새로운 느낌으로 재현해 주었다.


책이 재밌는 사물이라는 것을 깨달은 아이는 일찍 글자를 습득했고, 책에 빠져드는 어린이가 되었다. 기초적인 이해력이 좋은 편이었던 것도 이야기책을 읽어준 아빠의 공이 아니었을까.


돌이 지나고 걸음을 떼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겁을 먹고 벽에 붙어 이동하던 아이는 아빠 손이 몸통을 붙잡아 주자 자신 있게 발을 옮겼다. 한 동안 아이의 몸통을 붙잡아 주느라 남편은 아픈 허리를 부여잡아야 했지만, 덕분에 걸음마를 쉽게 익혔다.


아이의 성장에 따라 아빠의 육아는 좀 더 다이내믹 해졌다. 아이를 동반한 외출의 범위도 넓어졌고 함께 하는 활동의 종류도 다양해졌다. 병고에 시달리는 친정 엄마 걱정에 마음이 힘든 나를 쉬게 하고는 아이와 함께 수많은 체험을 했다. 오래된 참나무 둥치에서 하늘소를 찾고, 사육통을 사서 젤리를 먹여가며 성장하는 모습을 함께 관찰했다. 나무를 깎아 칼을 만들어주고, 배를 만들어 물에 띄워주었고, 종이접기를 좋아하는 아이에게 시범을 보여주었다. 아이의 눈에 아빠는 만물박사이며 못하는 것이 없는 슈퍼맨이었다.


아빠의 격려 속에서 아이의 붕붕카는 스카이콩콩으로 진화했고, 세발자전거 라이더가 되었으며 아장거리던 걸음은 달음질로 발전했다. 넘어져 울려다가도 아빠의 응원 속에서 벌떡 일어나는 용기를, 손재주 많은 아빠를 보며 장난감 조립에 심혈을 기울이는 열의를, 사람을 만나면 반갑게 인사하는 따뜻함을 배웠다.


아빠의 부재를 생각해 본다. 모든 아이들이 다정하고 섬세한 부모의 보살핌을 받으며 성장할 수는 없다. 나 역시 아주 오랜 시간, 평균 미달의 엄마 노릇을 했다. 게다가 부모 노릇이란 너무도 주관적이어서 각 가정의 울타리 안에서도 천차만별의 육아가 이루어진다. 갈수록 증가하는 한 부모 가정, 혹은 가정 밖의 아이들은 또 어떤가. 내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은 본능에 가깝다. 동남아 여행길에 나선 가족이 탄 작은 여객기가 추락할 때, 끝내 아기를 품에 감싼 채였다는 젊은 아빠의 이야기, 삼풍 백화점이 붕괴했을 때 아이의 유모차를 몸으로 덮은 상태로 발견된 어느 엄마의 이야기들은 우리를 눈물짓게 한다. 절대적인 그 애정이 세상의 모든 아이들에게 고루 나누어지면 어떨까. 충만하다 못해 익애가 되는 폐쇄된 애정 대신 내 아이에게는 숨 쉴 여유와 스스로 자랄 자유를, 사랑이 필요한 아이에게는 따스한 온기를 전해주는 세상이라면 내 아이 역시 더 행복한 사람이 되지 않을까. 육아를 마친 지 오랜 지금, 세상의 아이들은 사랑받을 권리가 있음을 다시금 상기하며 함께 아이를 양육하는 사회로 가는 길에 내가 할 일은 무엇인지 생각이 깊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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