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소아과 이야기
아기는 무럭무럭 자랐지만, 수월하기만 한 과정은 아니었다.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아이의 피부색이 노랗게 변하고 눈동자마저 혼탁해지는 느낌이었다. 아주 맑은 하늘처럼 투명했던 아이의 눈빛이 걱정스럽게 변하자, 남편과 나는 어쩔 줄을 몰랐다. 산부인과에서 나온 지 며칠이나 됐다고! 출산을 한 산부인과는 너무도 멀어 태어난 지 열흘도 못된 아이를 동반하기가 주저되었고 아직 믿을만한 소아과는 찾지 못한 터였다.
가까운 소아과의 젊은 의사 선생님은 신생아 황달이라는 진단을 내렸다. 아이의 피부색이 심상치 않다며 피를 뽑아 황달 수치를 체크하는 것이 좋겠다는 소견과 함께. 일단 신생아에게 흔한 증상이라고 하니 걱정은 덜었지만, 저 연약한 아이의 어느 곳에 주사 바늘을 꽂을 것인지 심장이 오그라드는 듯한 고통이 우리에게 먼저 찾아왔다.
벌써부터 눈물이 그렁그렁 맺히고, 이성을 상실한 채 어쩔 줄 모르는 나대신 남편은 다른 소아과 선생님의 의견도 들어보자며 길 건너 병원으로 이끌었다. 목소리부터 인자하시던 현 선생님! 아이의 눈, 발바닥 등 이곳저곳을 주의 깊게 살펴보더니, 며칠 두고 보자고, 당장 어떻게 되지는 않는다고 말씀해 주셨다. 과연 아이의 눈동자는 이삼 일 지나면서 원래의 투명함을 되찾았고, 우리는 그 후 이사를 할 때까지 문턱이 마르고 닳도록 그 병원을 드나들었다. 대부분 엄마들이 보호자로 오는 병원의 대기실에서 남편의 존재는 독특한 선망의 대상이기도 했다. 모유 면역력이 떨어질 무렵에는 연간 180회 이상 병원에 다니기도 했는데 어쩌다 내가 데리고 가는 날이면 간호사 선생님들부터 남편은 안 오는지 갸웃거렸다.
단 한 번도 과잉 진료를 하지 않고, 경험부족으로 우왕좌왕하는 부모와 겁에 질려 우는 아이들을 보듬어주시던 그 선생님을 만나 다행이었다. 훗날, 돌 무렵이 된 아이가 무리하게 어른들 여행에 동행했다가 설사병에 걸렸을 때도 그분은 해결사가 되어 주신 적이 있다.
여행지 의료원에서 지사제를 처방해주었는데 탈이 난 채 배설을 못하게 된 아이는 복통으로 죽을 듯이 고통스러워했다. 우리는 서둘러 집에서 가까운 대학 병원을 찾았다. 소아과 전문의는 이름도 어려운 희귀병의 가능성이 있다며 입원 치료를 명령하였다. 겁에 질려 입원을 결정했지만, 모든 입원 환자는 링거부터 맞아야 한다는 말에 또다시 고민이 시작되었다. 핏줄을 찾기 어려워 이마나 발바닥에 주사를 꽂은 아기들을 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링거 바늘이 아기에게 크나큰 두려움과 고통이며 바라보는 부모에게도 트라우마가 된다는 것을 이해할 것이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울고 있는 내 곁에서 남편은 동네 주치의 선생님께 일단 여쭈어보자고 제안했다. 다녀와서 입원해도 큰 차이는 없을 것이라며. 간신히 문 닫기 전에 도착하니 의사 선생님은 설사약 때문에 변을 못 봐서 그렇다는 진단과 함께 관장 한 번으로 아이를 구원해 주셨다!
물론 희귀병이 발병할 수도 있고, 초기 발견이 중요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거의 대부분의 경우, 면역이 약한 아기들이 성장하는 과정에서 외부의 바이러스나 세균에 감염되어 발생하는 감기, 배탈이기 쉽다. 당황한 부모의 초조함에 빈틈없는 진료라는 명분을 내세운 대형 병원의 과잉진료가 더해지면 연약한 아기에게 고통을 가중시키는 결과가 되기도 한다.
주치의 선생님은 우리 아기를 오래 보면서 본래의 체질이나 영양 상태를 잘 알고 있었고, 갑작스런 희귀병 발병이기보다는 여름철 물갈이로 인한 배탈일 가능성이 놓으며 갑작스런 지사제가 증상을 악화시켰다는 과정을 잘 알아보고 적절한 처방과 치료를 해주셨다. 입원을 시키라던 큰 병원 의사선생님의 소견을 비난할 수만은 없다. 아주 드문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것이 생명을 다루는 의료행위의 기본일 테니 말이다. 그럼에도, 주치의 선생님의 소박하지만 정성과 지혜가 담긴 치료는 우리에게 큰 의지가 되었고, 아이가 아플 때 덜 당황하고 침착할 수 있었다.
육아 초기, 나는 아이가 아프면 눈물부터 흘릴 뿐, 막상 아이를 어떻게 달랠지, 어떻게 조금이라도 아이를 편하게 해줄 지에는 생각이 미치지 못했다. 해열제, 물수건, 갈아입을 옷가지로 방안을 어수선하게 만들고는 ‘어떡하지’만을 연발하는 나와 대조적으로 아이를 대하는 최전선에는 늘 남편이 있었다. 기침하는 아이의 등을 세워주고, 열을 내리게 조처하는 그의 손길은 아이가 나을 것이라는 확신으로 굳건했다.
성공적인 남편의 육아 뒤에는 노력이 있었다. 임신 초기부터 나보다 더 꼼꼼히 임신, 육아관련 서적들을 읽고, 경험자들의 조언을 청해 듣고는 임신한 아내의 몸과 마음 상태를 이해하려 애썼기에 극심한 입덧으로 괴로워하는 나를 보듬어주었고 자신의 불편함도 기꺼이 받아들였다. 또 남편은 아기가 태어나면 겪게 될 일련의 과정들에 대해서도 미리 공부하고 준비한 덕분에 돌발 상황에서도 비교적 침착하게 대처할 수 있었다.
태아가 엄마 뱃속에 있으니 임신이라는 과정을 산모의 일로 치부하기 쉽다. 하지만, 임신은 부부가 함께 수행하는 과정이고 아기를 잘 키우기 위한 훈련과정이며 부부로 살아갈 긴 앞날에 대한 준비이기도 하다. 임신, 출산, 육아가 모든 부부의 의무는 아니다. 다만 아이를 양육하기로 했다면 결심한 순간부터 부부가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역할의 추가 한 쪽으로 기울지 않도록 조화를 이루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임출육’을 버거워하는 여성들에게 응원대신 날선 비난을 보내는 이들이 있다. 옛날 우리 어머니들은 밭고랑에서 애 낳고 곧바로 뒤돌아서 물 길어다 저녁밥도 지었다면서. 그렇지만, 댓돌에 신발 벗어놓고 산실로 들어가던 옛 여인들이 ‘내가 죽지 않고 살아서 저 신발을 다시 신을 수 있을까?’하며 출산의 고통과 위험 앞에서 눈물 짓던 속내에 대해서는 입을 닫는다. 아이를 낳아 기르는 일이 엄마만의 과제가 아니라 ‘부부’의 일이며 ‘세상’의 일이라고 생각하는 이가 많아져야 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