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육아-2

전문적 아빠의 탄생

by 이파리

아기가 뱃속에 있을 때가 편하다는 할머니들의 말씀은 지혜로운 예언이었다. 출산 자체는 순조로워서 2박 3일 만에 산부인과를 나왔지만 곧바로 진정한 가시밭길이 열렸다.


막내로 자란 데다 조카들이 태어나기 전에는 아가들을 접하지 못한 나는 아가들과 친하지 못했고 어찌 다루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막상 내 아이조차도 벅차고 버거웠다. 아이로 인해 기쁘고 반가운 것도 잠시, 어쩌다 아기와 둘만 있게 되면 울면 어쩌나 싶어 좌불안석이었고 육아는 임신보다 훨씬 난해한 일이 되었다.


남편은 나와 달리 천성적으로 아기들과 어린이들을 좋아했다. 지금도 같은 동에 사는 아이들을 다 알고 누가 학교에 갈 때인지, 어느 집 둘째 아이가 우리 멍멍이를 무서워하는지를 샅샅이 꿰고 있다. 코로나 전에는 주머니에 간식거리를 넣고 다니다가 아이들에게 나눠주곤 했고 아이들도 그런 남편을 스스럼없이 대하는 걸 보면 타고났다 싶은 사람이다.


육아의 고난은 모유수유에서 시작되었다. 서른이 훌쩍 넘도록 철딱서니라고는 없는 막내가 아이를 낳자, 친정엄마가 수유하는 산모에게 좋다는 돼지족을 연신 고아 주시고, 입덧도 끝나 정상적인 식사도 하건만 모유는 부족했다. 그러나 6개월까지는 모유를 먹이겠다고 마음을 먹은 터였다. 직장 때문에 아이 옆에 오래 있어주지 못하는 미안함도 내재된 결심이었다.

한여름에 둘둘 싸맨 채 시원한 물은 꿈도 못꾸는 산후조리 덕분에 영혼까지 너덜너덜해진 내 옆에서 아이는 배가 고프다고 울어댔다. 다행히 남편은 편안한 목소리로 아이를 달랬고 아이는 태내에서부터 친근해진 아빠 목소리가 들리면 울음을 그치곤 했다. 아이는 갓 태어났을 때부터 아빠의 목소리를 구분했는데 칭얼대다가도 ‘아빠 왔어’라는 목소리에 표정이 순해져서 다들 신기해했다. 목소리나 손길에서 감지되는 엄마의 불안보다 평온한 아빠의 정서 속에서 아이가 편안함을 느꼈기 때문이 아닐까.


아이도 나도 누워있기만 하던 출산 초기에 남편이 몇 시간씩 집을 비우곤 했다. 알고 보니 아이를 편히 데리고 다니기 위해 자동차를 사서 운전연습을 했던 것이었다. 남편은 아이가 클 때까지 안 간 곳이 없을 만큼 세상 구경을 시켜주었다. 자동차를 좋아하는 그는 3년 주기로 차를 업그레이드 했는데, 나는 남편의 소비에 반대한 적이 없다. 육아에 헌신한 공로로 평생 까방권(까임방지권-잔소리를 안 들을 권리)을 얻었다고 사람들은 말했지만, 그보다는 육아 과정에서 남편이 매사에 진화하고 발전하는 사람이라는 믿음이 생겼기 때문이다.

신생아 때부터 남편은 명실상부한 주양육자로서 아이를 키웠다. 육아라는 분야에서 엄마나 할머니들이 경영주의 자리를 차지해왔다면 우리는 부부가 공동경영자가 된 셈이었다. 그것도 남편의 지분이 훨씬 큰 구조로. 이후, 남편은 수유 이외의 모든 육아과정에서 절대적으로 큰 역할을 도맡았다.

나는 아이가 울면 저 작고 연약한 아이를 혼자 업으려다가 놓치기라도 하면 어쩌나 당황했지만, 남편은 자연스러운 솜씨로 아이를 안아주고 업어주며 달랬고, 기저귀 가는 법도 재빨리 익혔다. 아기가 응가를 하면 ‘여보!’를 먼저 부르짖던 나. 그런 남편에게 사람들은 이쯤 되면 젖도 나오지 않느냐며 농담을 했다. 기저귀 갈 때가 됐다거나 불편해하는 기색을 섬세하게 알아차리는 남편의 능력에 놀라는 내게 그는 ‘다만 지켜보면 된다’고 말했다. 아이의 입장에서 바라보면 왜 보채는지, 어떻게 해주면 되는지 알 수 있다면서. 하지만 나는 아이가 말을 배우기까지 신의 지문보다 더 난해한 그 사인을 알아채지 못했다.

아이의 감각 중 처음 발달하는 것이 시각이라며 남편은 첫 장난감인 모빌을 직접 만들어 매달아 주었다. 흑백으로 된 여러 도형의 첫 모빌부터, 알록달록 색을 칠한 잠자리, 나비 등의 다양한 모빌들은 아이가 조금 더 컸을 때까지도 애착템이었다. 여전히 아이에게 자주 말을 건넸고, 수시로 눈을 맞추며 만져주고 안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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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이 되자, 남편은 아이를 안고 목욕을 시키기 시작했다. 욕조에 물을 받아 자기 무릎 위에 아이를 눕히고는 한 번도 울리지 않고 아이를 씻겼다. 안정적인 아빠의 손길이 좋았는지 아이는 아빠와 함께 목욕하는 시간을 즐거워했다. 특히 사알살 아기 비누로 거품을 내서 머리를 감겨 줄 때면 아이는 만족감에 두 눈을 사르르 감곤 했다. 목욕 시간은 점점 길어져서 저녁 준비를 하는 내게 아이의 웃는 소리가 즐거운 배경음이 되었다. 아빠와의 목욕은 아이가 혼자 씻을 수 있을 때까지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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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 후에는 포대기로 감싸 아이를 업어 주었고, 외출 할 때에는 캥커루처럼 가슴띠를 하고는 아이를 앞으로 안고 다녔다. 분유를 섞어 먹이게 되고부터 잠이 많은 나대신 한밤의 수유도 남편 몫이 되었고 제때 기저귀를 갈아주는 손길도 대체로 아빠의 손길이었다.(엄마는 무엇을 했느냐고 묻지는 말기를. 맞벌이 가정의 집안일은 육아 말고도 쉴 새가 없답니다. 그리고 아이의 기저귀를 남편이 갈아준 댓가로 지금은 외출 시, 두 마리 강아지의 배변 처리를 도맡고 있습죠.)


젖병 소독, 적당한 온도로 분유 타기, 먼 길 떠날 때 분유통에 적당량을 덜어 준비하기, 옷 갈아입히기 등등 열거하자면 끝도 없을 to do list를 남편은 행복한 얼굴로 수행했다. 아이는 엄마가 안 보이는 건 괜찮아도 아빠가 안 보이면 우는 지경이 되었고 사람들은 신기해하며 바라보았다. 어느 날은 외출하고 돌아와 우는 아이를 발견했는데 이유인즉, 아빠가 화장실에 들어가서 보이지 않자 분리불안 증세를 보인 것이었다. 그 후로도 종종 남편은 아이를 안고 화장실에 들어가야 했다.


남편은 아내를 돕는 차원이 아니라 동등한 부모로서 양육자 노릇을 주체적으로 해냈고, 이런 태도는 긴 결혼 생활에서 전적으로 남편을 신뢰할 수 있는 바탕이 되었다. 또한 부성애가 모성애에 비해 절대 부족하지 않다는 사실도 깨닫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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