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둑맞은 가난(박완서)' 서평
제목 : 타인의 시선
가난은 불길한 소문이다. 주인공이 되기는 싫지만, 눅눅하고 어두운 그 이야기는 어떻게 전개되는지 매우 궁금해진다. 아닌 척 점잔을 빼면서 기웃대는 그 소문의 진상을 한 편의 단편 소설에서 발견한다. 작가 박완서는 ‘도둑맞은 가난’에서 1970년대 도시 빈민의 삶과 계층 간의 갈등을 지독하도록 생생한 묘사와 거침없는 속도감으로 그려놓는다.
가난을 저주하고 환멸하다 못해 죽음이라는 방식으로 가난에서 탈출한 엄마. 그 곁에는 아버지와 형제들이 동반하였고 혼자 살아남은 딸은 월세 사천 원의 가난한 방에서 삶을 꾸려간다. 일견 씩씩해 보이나 들여다보면 마디마디 피가 맺혔을 그 삶에 풀빵을 냅킨에 싸 먹는 공장노동자 상훈이 등장하고 둘은 살림을 합친다. 돈을 아낀다는 명분이었지만, 분명 그녀에게는 상훈과 동반자가 되고 싶은 소망이 있다. 하지만, 철석같았던 관계에의 믿음에 균열이 일어나고 그 끝에는 상훈이 부잣집 도련님이라는 진실이 기다린다. 게다가 그 도련님은 가난에 대한 모멸을 분명한 태도로 보여준다.
가난이란 무엇인가? 생존은 의식주의 해결로 가능하지 않을까? 그러나 ‘월 만 원’의 수입이 가능한데도 삶을 등진 가족의 선택은 가난이 목숨을 부지하는 문제만이 아님을 보여준다. 화자의 엄마를 죽음으로 내 몬 것도 상대적 빈곤감으로 인한 마음의 무너짐이었을지 모른다. 복수하듯 딸 하나만 남기고 죽어버린 엄마를 용서하지 못하다가도 꿰매 입은 속옷을 부자 친구에게 들킨 심정 같은 것이 아니었을까 생각하면 죽은 그녀에게 한 가닥의 연민이 생긴다. 또한 인간 자체에 대한 존중과 예의야말로 생존보다 소중한 삶의 조건이라는 생각도 든다.
살고자 하는 욕망과 이 욕망을 방해하는 가난만이 존재할 때에는 수치가 없다. 가난이 나만의 것일 때, 우리는 자연스럽게 불편과 고통을 감내한다. 이때 가난은 우연히 주어진 삶의 조건일 뿐, 자랑도 수치도 아니다.
그러나 타인의 시선이 개입하면 가난이 새삼 달라 보인다. 남루한 살림뿐 아니라 아무렇지 않게 그 속에서 살아온 스스로의 모습조차 낯설고 부끄러워진다. 화자는 소설의 말미에서 그 부끄러움을 느낀 것이 아니었을까. 그 수치가 하도 크고 무거워서 상훈을 향한 분노로 터져 나온 것이 아니었을까. 부모 형제의 죽음을 견디고도 살아낸 그녀가 상훈이 내민 초라한 끄나풀, 동정이라기에는 너무도 차가운 시선을 마주하고 더 삶의 용기를 잃지나 않았을까 조마조마해진다.
양복 차림의 도련님으로 나타나 동거인에게 해괴한(!) 동정을 내보인 상훈의 얄팍한 인간성에 환멸을 느끼게 되는 것은 인간의 도리란 때로는 본 것을 못 본 체해 주는 것일 수도 있다는 깨달음 때문이다.
체한다는지나가주는못 본 체 한다는 것은 거리감의 다른 표현이다. 장애인의 몸을 뚫어져라 바라보는 눈, 피부가 검은 사람들에게 들으란 듯 ‘깜둥이’라 부르는 목소리, 특정 지역을 비하하는 비웃음을 우리는 여전히 적지 않게 보고 듣는다. 그 잔인한 시선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은 무심한 태도에 담긴 존중을 바라고 있지 않을까. 자기 마음대로 남의 불편과 결핍을 들춰보는 오지랖이 아니라 적당한 거리에서 별일 없으면 지나가주는 거리감을 말이다.
50년 가까이 지난 이야기 속에서 오늘날 여전히 타인의 시선에 상처받는 많은 사람들의 모습을 떠올린다. 그 많은 사람 속에 나와 몹시 닮은 사람의 모습도 분명 존재하기에 이 짧은 명작을 읽으며 내 시선의 방향과 온도를 점검해 보게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