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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다반사 7

친구에게

by 이파리

새로 시작한 공부는 꽤나 재미있어. 그렇다고 수업 태도가 매우 성실한 것은 아니어서, 가끔 수업 들으며 졸기도 하고, 핸드폰으로 블록 깨는 게임도 한다니까. 선생님일 때, 수업 태도 안 좋은 아이들을 좀 더 이해해 줄 걸 그랬어. 그땐, ‘사춘기 아이들은 제시간에 학교 오고, 제시간에 밥 먹고, 제시간에 집에 가면 훌륭한 거야’ 그랬어. 그 정도 생각이면 아이들에게 나쁘지 않은 교사라고 생각했는데, 내가 다시 학생이 되어보니 -심지어 내가 원해서 하는 공부인데도- 하루에도 몇 시간씩 책상에 앉아 수업만 듣는다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새삼 실감을 하게 되네. 피곤하면 집중이 잘 안 되기도 하고, 공부를 좀 했다 싶으면 ‘이제 그만하고 슬슬 재밌는 걸 찾아볼까?’하는 심정이 되더라. 에너지가 차오를 나이의 학생들이 종일 좁은 교실에서 수업을 듣다가 하교 후에는 학원에 가는 일상에 대해 더 깊이 공감하고, 문제 제기를 했어야 했는데 말이야. 타성에 젖어 철밥통을 지키는 교사는 되지 않겠다고 매일 각오를 다졌는데도 퇴직하고 되돌아보니 부족했던 것들 투성이야.


요즘은 루틴의 인간이 되어가고 있어. 천성이 제멋대로라 평생 자유를 그리워했는데 이건 또 무슨 이율배반일까? 끝없는 자유 앞에서 하고 싶은 일이 없어지는 이 희한한 경험이라니! 원 없이 돌아다니겠다는 여행에의 갈망도 막상 무한의 시간을 앞에 두고는 슬그머니 사그라들었어. 타클라마칸 사막도, 포카라의 페와 호수도, 아프리카 초원 사파리도 지금은 스케줄러의 미확정 페이지(그런 게 있다면)에 흐릿한 글씨로만 남은 셈이야.


아침에 일어나 식구들 간단한 아침 식사를 챙겨주고는 늙어가는 멍멍이 두 마리를 데리고 산책을 먼저 해. 더 나이를 먹은 쪽은 열네 살이야. 이제는 귀도 잘 안 들려서 그리도 총명하던 아이가 멍한 표정을 지으면 마음이 아파. 얘가 세상 떠나면 우울증이 올 거야. 오늘도 멀쩡하게 잘 걷는 멍멍이를 보면서 문득 ‘쟤 죽으면 어쩌지?’라는 생각이 들자마자 눈물이 핑 돌더라구.


감정 자체는 메말라가는 것 같고, 느끼는 정서의 색깔은 수가 줄어드는데, 어떤 감정은 너무도 강렬해서 도저히 견딜 수 없을 때가 있어. 두려움에 관련된 정서는 더 세분화되고, 더 세게 느껴지는 것 같아. 자기는 어때? 내가 아끼는 대상들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어쩌나, 병이나 죽음이 생각하지 못한 방식으로 잠식해 오면, 그래서 내 정신이 무너지면 어쩌나, 세상이 너무나 급하게 바뀌어서 내가 익힌 삶의 기술이나 내가 지니고 있는 자원만으로 버틸 수 없게 되면 어쩌나...


남편이 차를 바꾼다며 이것저것 알려주는데 문 여는 방식부터 머리가 지끈거려. 처음 운전대에 앉았던 이삼십 년 전, 큼직한 차 열쇠로 시동을 걸고, 엔진음이 그르렁거리던 설렘은 이제 없나 보더라. 버튼도 아니고 터치로 차를 운전하는 시대. 세상이 뒤에 남은 나를 버려두고는 신나게 앞서 달려가는 것만 같아. 한때는 나도 그랬을까? 뒤에 누가 있는지 알려고 하지도 않았을 때가 내게도 있었을까?


멍멍이들을 데리고 들어와 발을 닦이고 간식을 주고 나면 이웃 동네 뒷산에 올라. 요즘은 매일이다시피. 해발 200미터나 되려나, 한 시간 반이면 너끈히 정상까지 다녀올 수 있어. 자그마한 산이지. 굳이 등산화나 스틱을 준비할 것도 없이 손수건 한 장 달랑 들고, 이어폰 챙겨서 나가면 그만이야. 신호등이 있는 6차선 도로를 하나 건너면 오르막이 시작돼. 엄청 가파른 길이야. 이제 곧 대규모 아파트 단지로 변모할 거라서 작고 올망졸망하던 비탈의 집들은 거의 비어 가고 있어. 아직도 이런 집들이 있었나 싶게 허름하고 작은 연립주택이나 당시에는 꽤 번듯하게 지었을 철 대문 집들이 이제는 주인을 잃고 접근 금지의 노란 스티커를 붙인 채 남은 걸 보면, 한 시대의 몰락을 보는 듯 마음이 허전해져. 오늘은 허물어져가는 돌담 안쪽 살구나무에 소담하게 꽃이 핀 걸 봤어. 나무를 심었을 주인은 떠나고 혼자 남아 마지막 봄을 보내는 걸 저 나무는 아는지. 새 단지를 조성할 때마다 아름드리나무들이 잘려 나가는 걸 보면 무서워. 저 나무들의 거주권은 어쩌나.


이사를 나가는 사람들이 동네 여기저기에 쌓아 둔 살림의 잔재를 보는 느낌도 기묘해. 테이핑 된 채로 버려진 사과 박스를 봤어. 낡은 박스 위쪽에는 단정한 글씨로 내용물 정보가 쓰여 있었지. 아마도 언젠가는 이 박스 안의 물건을 사용하려고 뒀다가는 새 집에 어울리지 않게 된 짐이라 버린 것일까? 옆에는 아직 한참 써도 될 밀폐 용기들, 커다란 유리병째 버려진 장아찌와 담금주, 오래된 뒤주, 할머니 집에서나 봤을 법한 사기그릇들이 올망졸망 쌓여있었어. 어느 집 앞에는 아이들 신발과 피아노가, 또 다른 집 앞에는 매트리스가 주인과 헤어져 대형 폐기물 스티커를 붙인 채 버려져 있었지. 어떤 아련함과 더불어 황망함이 느껴졌어. 매무새를 가다듬지 못하고 밖으로 떠밀려 나온 아낙네를 보는 심정 같달까? 불과 얼마 전까지 아늑한 실내에서 온기를 띠고 인간 삶을 지탱해 주었을 텐데, 백주 대낮, 봄날의 햇살 아래 적나라하게 드러난 저 물건들이 너무도 처연해서 내 가슴마저 텅 비어버렸어. 며칠째 보이는, 다리를 저는 저 검은 고양이는 또 어쩌나 싶고.


산은 봄으로 가득해. 거짓말 같아. 이번 봄에는 제비꽃에 마음이 많이 가. 가물어서 먼지가 풀풀 날리는 등산로 가에는 기적처럼 보라색 제비꽃이 여기저기 무리를 이루고 피어 있어. 짙은 보라색, 연보라색, 아주 옅은 색도 있고, 크기도 제각각이야. 단연 마음이 가는 쪽은 아주 작은 꽃들이지. 어찌나 섬세한지, 한참 들여다보고 있어도 질리지가 않아. 집에 와서는 내일 또 제비꽃과 만날 생각뿐이지. 자연은 저 아름다운 것들을 잘도 만들어내는구나. 인간은 이 제비꽃 한 송이도 만들 수 없는데 왜 이렇게 자만하고 잔인할까. 어느 구비에 어떤 색깔의 제비꽃이 피었는지 외울 정도로 제비꽃 지도가 내 머릿속에 생겼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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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개를 들면 산수유 꽃들이 눈을 틔워주고, 조금 더 가면 활짝 핀 진달래 동산이 있어. 산수유 언덕에는 새들도 많아서, 어제는 어치 가족을 봤고, 오색딱따구리 두 마리를 한참 지켜본 적도 있어. 박새, 멧새 같은 작은 새들도 지천이야. 새 이름이나 꽃 이름, 나무와 풀이름을 많이 아는 사람이 되고 싶어. 자꾸 잊어버리곤 하지만, 자주 보고 자주 말하면 기억하게 되겠지?


산을 내려오면 간단히 요기를 하고 –밥은 많이 안 먹기로 했어- 잠시 쉬고 나서 공부를 하려고 힘을 모으지. 한두 시간은 족히 해찰을 하고서야 책을 펴. 두 개쯤 강의를 듣거나 과제물을 만지작거리면 저녁. 거실에 나가보면 어두워져 있곤 해. 길만 건너면 내가 좋아하는 맥줏집이 즐비한데도 나가기는 내키지 않아. 단순한 동선이지만, 단정한 하루를 보낸 표식인 것 같아서 조금 만족스러워. 내일도 이만큼만 살아 보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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