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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장고를 비우며

by 이파리

시험이 다가오면 벽지 무늬 세는 것도 재밌고, 방구석을 기어 다니는 개미 관찰하기도 재밌고, 심지어 청소마저도 재밌어져서 방이 깔끔해진다는 글을 읽었을 때는 젊은 애들의 치기라고 웃어넘겼다. 차라리 공부를 하지, 무슨 핑계람. 그런데 방송대 기말시험이 코앞으로 다가오자 이야기가 달라졌다.

팔자에 없는 조지 오웰의 산문을 쌩영어로 더듬더듬 읽어가며, 도무지 머리에 새겨질 마음이 없는 단어들을 달래 가며, 모래로 성벽을 쌓아 올리던 중, 냉장고 문이 눈앞에서 열린 것이었다.


헬 게이트 오우쁜!(영문학도의 자존심이 담긴 본토 발음!)


구중궁궐도 아닌데 손도 닿지 않는 깊은 곳에 다소곳이 자리를 잡고 앉은, 신원불명의 유리병들, 밀폐용기들, 어찌나 차곡차곡 쌓았는지 공기조차 통하지 않을 듯한 반찬 그릇들! 평소 같으면 흐린 눈으로 ‘다음에 꼭 먹어야지...’하며 콩 닫고 말았을 그 문 손잡이를 오늘만큼은 시험을 앞둔 학생답게 꼭 움켜쥐고 하나하나 점검해 본다. 매의 눈이다.

흠... 저 통은 지난겨울 시어머니가 아들 좋아한다고 만들어주신-그러나 굴이 커서 손이 안 간다는 이유로 버림받은 어리굴젓, 옆의 것은 역시 아들 주라고 만들어주신 장아찌-역시 한두 번 먹으면 다시 손이 안 가는 남편 식성에 비해 너무 대용량, 고 위에는 호두랑 땅콩까지 야무지게 넣어서 만들었지만, 역시 너무 많이 만들어서 자기들끼리 죽어버리기로 합의한 멸치볶음, 멸치 통과 물 샐 틈 없이 끼워 맞춰진 통에는 겉절이로 태어나 신김치로 사망한 그 무엇, 일회용 플라스틱 통에는 어언 한 달 전 사다 먹은 죽에 딸려 온 반찬...

에휴... 시작은 미약했으나 만들다 보면 끝이 창대해지고 마는, 반찬계의 마이더스, 절제를 모르는 극단주의자, 울트라 자이언트 핸드의 소유자인 나와 정말 가난한 시절을 겪으신 터라 후천적으로 손이 커지신 시어머니가 함께 만든 심포니, 부패의 환상곡이라 아니할 수가 없구나. 어쩌나!

음식 솜씨 없는 사람의 특징이 음식을 못 만드는 것만은 아니다. 이것저것 넣다 보면 어디선가 맛이 나와 가끔은 먹을 만한 것을 만들기도 하는 것이다. 그 재미로 음식 비슷한 것을 무수히 생성하는 과정에서 탄생한 그것들을 어찌 미워하랴마는 괴물을 창조한 프랑켄슈타인의 심정이 되어, 내 이성은 눈을 감고 이리저리 도피했던 것이었구나.

만들어서는 내동댕이친 주인에게 원망의 눈초리를 보내던 반찬통들을 외면하던 나는, 오늘만큼은 두 눈 부릅뜨고 생존 자격 심사를 한다. 그러나 열을 맞추어 서서 ‘죽여주시옵소서!’를 연발하는 충신들의 이미지가 떠오르는 것은 무슨 연유일까. 너희들, 진짜로 이제는 정말 죽고 싶은 거구나...

나는 돌연, 심사자에서 집행인으로 신분 세탁을 한다. 그래, 내가 원하는 게 아니야. 너희가 원한 거지. 가는 길은 깨끗하고 정갈하게 만들어줄게! 그러나 최소 며칠에서 최대 몇 달(이라 쓰고 몇 년이라 읽는다)을 묵은 병과 통들 중에는 바닥과 합체가 되어 우리 사이를 인정해 달라고 떼를 쓰는 것들도 있다. 아니 될 말. 여기는 종교단체와 같단다. 가족끼리 무슨 연애를! 가차 없이 떼어내고 선반을 분리해서 원초적 투명성을 되찾아준다.

냉장고가 훤해졌다.(이 또한 지나가리라...) 참 이상하다. 사실, 나는 바로 얼마 전에도 이 짓을 했던 기억이 또렷하다. 분명, 깔끔하게 치우고 정리를 했던 것 같은데 무슨 일이 저 안에서 일어나는 것인가. 합리적 의심. 닫힌 냉장고 문 뒤에서 반찬들은 모의를 하는 것이 분명하다. CCTV 설치를 알아보아야겠다.

냉장고가 처음 집에 들어온 날은 몹시 흥분했었을 터이다. 한여름의 차가운 수박, 큐브 모양의 깜찍한 얼음, 더운 날씨에도 쉬지근한 냄새를 피우지 않는 정갈한 반찬들. 그러나 몇 차례 새것으로 바뀌면서 냉장고는 시민혁명을 겪은 귀족들처럼 서민화 되었다. 그것도 서러울 터에 오늘은 게으른 주부에게 손잡이가 잡혀 수모를 당하는구나.

늘 냉장고에게 남은 반찬의 뒤처리를 맡겨놓고는 모르쇠로 일관하다가 폭발 일보 직전이 되어서야 뒤늦은 수습을 하는 인간이라니. 원망이나 말든지. ‘너 때문이야’는 냉장고가 나에게 하는 말이 아니었을까? 내가 냉장고에게 할 말은 절대 아니지 싶은데...라고 하는 것은 냉장고가 있어서 이 사달이 났다고, 너만 없었으면 제때제때 음식을 처리하고, 조금씩만 만들었을 거라고 혼자 속으로 종알거린 전적이 있기 때문이다.

냉장고를 원망했다 사과했다 별별 주책과 변덕의 오두방정이 끝나고, 이제는 그만, 냉장고에게도 나에게도 식구들 입에게도 휴식을 주어야겠다고 다짐한다. 다른 쓰레기를 버릴 때도 마찬가지지만, 특히 남은 음식을 버릴 때의 죄책감과 부담감은 늘 마음을 불편하게 한다. 이것들을 정화하려면 얼마나 많은 자원이 소모될 것이며 지구 환경은 얼마나 더 피폐해질 것인가.

급 비분강개하는 친환경주의자가 내 안에서 튀어나오는구나. 오래 머무르렴. 쓸데없는 ‘삘’을 받아 음식점 규모의 식재료를 사려 들거든 내 ‘손모가지’를 비틀어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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