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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치 없이도 흥겨운 육십 번째 생일

'탄신주간'과 다섯 가지 생일 선물

by 이파리

음력 5월 말, 양력으로는 보통 7월 중순에 생일을 맞는다. 무더위 아니면 비구름이 그득했을 1963년의 어느 여름날, 엄마는 마흔 나이에 늦둥이 막내딸을 낳으셨다. 새카맣고 못 생긴 것으로 모자라, 한쪽 눈을 감고 태어났다는 탄생 설화(!)는 나이 들어서도 철이 안 들고 생뚱맞은 언행을 일삼는 나의 기질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다행히 감긴 눈은 사흘 만에 뜨였다고 한다.


천성이 무덤덤하고 섬세하지 못해서 기념일을 챙긴다거나 곰살궂은 의례를 수행하는 데는 관심도 솜씨도 없다. 가까운 이에게 불쑥 꽃다발을 건네거나, 좋은 책을 읽다가 떠오르는 사람에게 같은 책을 선물했다는 변명으로 나의 무심함을 덮어보려 하지만, 다정 그 자체인 남편에게는 늘 미안할 뿐이다.


올해는 게다가, 환갑이다. 태어난 해의 간지와 같아지는 해. 동갑인 남편과 나는 계묘년에 태어나 다시 계묘년을 맞았다. 수명이 길지 않던 시대의 환갑이란 상당히 기념할 만한 일이었을 터이고, ‘환갑잔치’라는 용어는 아직 낯설지 않다. 그러나 백세 시대를 당연히 받아들이는 지금, 60번째 생일은 퍽 어정쩡하다. 잔치를 벌이기도 어색하고 특별한 이벤트는 피곤하다. 격식을 갖춘 축하를 받으면 리액션도 뚝딱거리기 일쑤여서 부끄럽다.


내 생일이 조금 일러, 먼저 생일 당사자가 되었다. 제발 아무것도 하지 말아 달라고 남편에게 신신당부를 했다. 그 대신, 생일이 포함된 일주일을 ‘탄신주간’으로 정해서 가사-특히 밥 차리는 일에서 해방시켜 주는 것으로 선물을 대신하기로 타협을 보았다.


드디어 탄신주간. 밥을 안 한다는 것이 가져다주는 해방감은 감미롭다. 먹다 남은 찌개는 홀로 부글부글 상해 가고, 쌈채소는 냉장고 안에서도 녹아내리기 일쑤인 한여름의 끼니 준비는 비 오는 날의 솜사탕처럼 허무한 과업이었으니. 과일이나 몇 가지 냉장고에 준비해 두고는 귀부인이 된 듯, 시간 가는 것에 무심한 채 책을 읽는다.

술과 향수

월요일, 귀가하는 남편의 손에 뭔가 고운 것이 팔락거린다. 표정은 싱글벙글. 아니, 이것은? 술 좋아하는 마누라에게 여섯 병들이 소주를 선물로 준비한 것이었다. 손수 만든 하트 모양의 카드에 적힌 메시지까지 그야말로 ‘갓벽한’ 선물이 아닐 수 없고, 나는 박장대소를 하며 첫(!) 선물을 받아 들었다. 게다가 이번 주 저녁 식사는 무조건 외식이니 어찌 흥겹지 않으랴!


다음 날 역시 술 - 내가 좋아하는 칭따오 맥주와 카드를 받아 든 나는 남편의 재치와 정성에 몹시 즐거워졌다. 수요일에는 예쁜 향수를 받았다. 이름도 도발적인 롤리타의 램피카 향수는 향이 다소 자극적이어서 자주 즐기는 편은 아니지만, 충동과 길 잃은 열정에 휘둘리던 젊은 날의 추억을 소환한다. 빨간 상자에 담긴 예쁜 향수병을 보는 것만으로도, 아주 엷게 향기를 주변에 흩어지게 하는 것만으로도 새삼 마음이 들뜨는 선물.


목요일의 선물은 세 장의 미화 20달러였다. 60은 세 번 째 스물이 아니겠느냐고, 언제까지라도 젊은 마음 잃지 말라고 쓴 카드에 울컥해진다. 이런 아이디어를 떠올리기까지, 남편은 얼마나 많은 고심을 했을까. 넉넉한 품성으로 맏아들인 남편을 든든히 받쳐주었으면 좋았을 것을, 속은 좁고 고집스러운 데다가 게으르고 폐쇄적인 여자를 아내로 맞아 반생을 홀로 고심하고 마음 상할 때도 많았을 텐데. 미안하고, 스스로에게 속도 상했다. 그러라고 주는 선물이 아님을 잘 알면서도.

편지와 축하금, 직접 그리고 만든 봉투

그것까지만 해도 나에게는 과분한 마음이었는데, 남편은 마지막 선물을 준비하고 있었다. 장문의 편지와 60송이 장미바구니, 그리고 두툼한 현금 봉투. 언제 준비를 저렇게 한 건지, 서평 모임에 나가고, 에세이를 쓴답시고 수선스런 나는 막상 남편에게 언제 편지를 썼는지 기억도 없는데. 지나간 날들에 대한 고마움과 앞으로는 나를 최우선으로 생각하라는, 자신도 그리 돕겠노라는 약속과 결심을 읽으면서 부끄러웠다. 내 일들을 사랑보다는 책임감으로, 기꺼이 할 때도 있었지만, 마지못해 할 때도 많았던 시간들이.


생일에는 정말 많은 축하를 받았다. 단촐하던 나의 톡과 통화 기록은 그날만큼은 분주하고 흥겨웠다. 내 환갑은 이렇게 지나갔다. 기념일 기피증은 과하지 않은 축하의 말들과 소박한 술자리로 치유 되었고. 내 삶이 더 이상 낯설지 않게 되었다. 환갑, 태어난 날과 같은 자리에서 어른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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