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별
출근하는 아들에게 주려고 사과를 자른다. 사과 조각을 받아먹으러 토독토독 다가오는 소리가 없다. 아, 정말 없구나, 우리 꽃순이.
겨울비가 종일을 내리다가 그쳐가던 밤, 나의 개 꽃순이는 숨을 거두었다. 오월이면 열여섯 살이 되었을 텐데, 십오 년 팔 개월을 머물던 이 세상을 떠나 무지개다리를 건넜다. 강아지별에는 잘 도착했니? 남편은 비가 그쳤으니 어딘가 무지개가 떴을 거라고, 똑똑한 꽃순이가 날을 잘 골라서 간 거라고 중얼거린다.
예쁘고 귀엽게 생겨서 나가면 이목을 집중시키는 둘째 강아지도 있지만, 어쩐지 나는 나이가 들어 털의 윤기가 사라지고 얼굴도 초췌한 꽃순이가 ‘내 개’라는 의식이 강했다. 다만, ‘내 것, 내 사람’에게 더 친절하고 다정한 사람이 못 되었다. 사랑이 넘치는 개와 매정한 나, 늘 함께 있고 싶어 하는 개와 밀착 상황을 오래 견디지 못하는 사람 사이의 간극을 메우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꽃순이는 운명 같은 내 개였고, 나는 그 아이가 떠나면 앓게 될 상실과 고통을 미리 알고 있었다. 건강하고 활기찬 개였지만, 어느덧 노견이 되었고, 움직임이나 외양이 전 같지 않음을 느끼면서도 한사코 오래 살 거라고, 믿고 싶은 대로 되뇌면서 어두운 예감을 밀어냈다. 지난가을 무렵부터 산책을 나서려면 전과는 달리 집에 누운 채 리드 줄을 챙기는 가족을 외면하던 꽃순이, 그래도 가족이 원하는 것이면 거부하는 법이 없던 아이는 몸을 일으켜 우리를 따라나서곤 했다. 볕이 좋은 날, 눈을 가느다랗게 만들며 햇빛을 좇던 우리 꽃순이.
어릴 적에는 기운이 넘쳐 뒷다리를 있는 힘껏 추켜 올리며 마킹을 해대서 오빠로부터 ‘어딜 내놔도 부끄러운 강아지’라는 별명을 얻은 꽃순이는 서서히 기력을 잃어가고 있었다. 삼주 전쯤, 눈이 쌓인 뒤라 염화칼륨이 걱정되어 신발을 신겨 나가려고 하자 평소와 달리 걷기를 주저했다. 신발 때문인가 싶어 벗겨주자 느린 걸음이지만 그런대로 따라오더니 집에 들어와서는 다리에 기운이 풀려 주저앉고 말았다.
어릴 적에는 안양천 주변을 치타처럼 펄쩍펄쩍 날다시피 질주하고, 힘이 캥거루 못지않던 우리 꽃순이의 다리는 제 몸을 못 가누고, 가족에게 다가가지도 못하는 상태가 되었다. 검사를 하고 약을 먹여서 일주일을 벌었다. 꽃순이는 다시 일어나서 구운 고기를 받아먹고, 가족에게 다가왔다. 아저씨(남편)의 밥상 아래로 떨어지는 부수입의 단맛도 다시금 즐기는 듯했다. 나는 또다시 ‘얘는 오래 살 거야’라는 근거 없는 주문을 반복했지만, 늘 그렇듯 내 소망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떠나기 삼사일 전쯤, 꽃순이는 사지의 힘을 완전히 잃었다. 축 늘어진 아이를 부여잡고, 그래도 맑은 눈빛에 희망을 걸고는 ‘이렇게 있어도 괜찮아. 아줌마(나)랑 꼭 껴안고 누워서 넷플릭스나 보면서 살면 되지!’하며 아이에게 말을 건넸다. 딱 이틀인가, 꽃순이가 평소에 좋아하지만, 내가 잘 받아주지 않던 자세, 옆으로 나란히 누워 팔베개를 해주고 잠을 잤다. 그 따스함, 부드러움을 다시 한번만 느낄 수 있다면. 삶은 간혹 지옥이다. 기쁨의 맛을 알지만, 다시는 느낄 수 없다. 정말, 이렇게, 나를 바라보기만 해도 좋으니, 옆에만 있어주기를, 가족과 눈을 맞추고, 약을 잘 받아먹고, 물이라도 제 힘으로 삼키면서 오래오래 살아있어 주기를 얼마나 바랐던지.
그러나 아이의 의식이 흐릿해지는 것이 눈에 보였고, 목까지 경직되어 가누지 못했다. 집에 데려온 아기 시절부터 욕실에서 일을 보던 영민한 꽃순이는 누운 채 소변을 보았고, 물조차 넘기기 어려워했다. 그래도, 그래도, 그래도! 꽃순이 곁에서 시간을 보내려 거실에 담요를 깔면서 똥오줌 시중도 들어줄 테니 오래만 버텨달라고, 숨만 쉬어도 괜찮다고, 가지만 말라고 수없이 이야기했다.
착하고 착한 꽃순이. 패드에는 딱 두 번 오줌을 쌌을 뿐이다. 죽음과 벌이는 싸움에서 얼마나 고통을 겪었을지는 가늠이 안 된다. 다만, 아저씨(남편) 품에 안겨있던 마지막 이틀 동안 서너 번, 입을 벌려 아픔을 표시했을 뿐이다. 발톱을 깎거나 털을 정리할 때, 실수로 상처가 나도 떼 한 번 안 쓰던 우리 꽃순이, 가족에게 한없이 마음을 열고 있던 우리 꽃순이는 마지막까지도 제 아픔을 안으로 삭인 채, 가족이 다가오면 눈을 마주치며 사랑을 보내주었다. 끝까지 흐려지지 않던, 그래서 더 마음에 새겨진 눈빛. 그 애정.
나는 건조한 사람이다. 반려동물이 무지개다리를 건너 고양이별, 강아지별에 가서 반려인을 기다린다는 이야기에 담긴 감상 같은 건, 본능적으로 거부하는 냉정함이 내 안에 가시처럼 도사리고 있다. 내 영혼이 허물어지는 것처럼 아팠던 엄마의 영면, 몇 년 전 나를 또 한 번 무너뜨린 언니와의 이별에서도 나는 천국을 믿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 오로지 가족밖에는 몰랐던 나의 개가 내 곁을 떠나고 난 후, 제발 부디 무지개다리를 잘 건너 강아지별에서 걱정 없이, 아픔 없이, 외롭지 않게 뛰놀고 있기를 얼마나 간절히 바라는지 모른다.
인간에 대한 사랑이 부족해서도, 동물을 인간보다 아래에 있는 별종 취급을 해서도 아니다. 그저, 인간의 삶에 적응해서 인간이 주도하는 대로 살 수밖에 없던 나의 개가 어디선가는 제 마음껏, 목줄 없이 가고 싶은 곳으로 훨훨, 자유를 누리기를 바랄 뿐이다. 나는 나의 개에게 어떤 의미로 폭군이었는지 모른다. 늘 나를 바라보는 개에게 마음 내킬 때만 눈을 돌렸고, 내 손길만을 기다리는 개가 부담스러웠다. ‘왜 얘는 독립적이지 못한 거지?’ 하며 더러운 잘난 체를 했다. 지금 내가 느끼는 고통은 복수였던 거니? 하지만, 우리 꽃순이가 복수를 할 만큼 모진 아이가 아니라는 걸 내가 잘 안다. 이 아픔은 그 아이가 준 큰 사랑이 이제는 없어서 느끼는 결핍이고 뒤늦은 후회와 깨달음일 뿐이다.
사과를 받아먹으러 오는 꽃순이, 내가 엎드려 책을 보면 슬며시 열린 문을 밀고 들어오는 꽃순이, 밥상을 차리면 나 몰래 손을 뻗어 먹을 것을 주는 아저씨 옆으로 다가오는 꽃순이를 이제 볼 수가 없어서 나는 수없이 눈물바람을 할 것이다. 그러면서 부족했던 내 사랑을 반성하게 될 것이다.